6개월 계약할 집을 보러 갔다가, 1년 계약을 해버렸다
이 에어비앤비에서 머무는 날도 이제 일주일 채 남지 않았다. 시차 적응하고, 학원에 가고, 자잘한 일을 처리했더니 벌써 시간이 훅 지나버렸다. 사람들이 "1-2주면 현지에서 살 집 구할 수 있어요"라고 하긴 했지만 정말 가능한 걸까. 캐리어 안쪽에 넣어 놨던 노트북을 꺼내서 스페인 집 구하기 최대 사이트 idealista에 들어갔다. 관심이 가는 집은 구글독스에 정보를 정리해서 기입했다. idealista로는 마음에 드는 집이 별로 안 보여서 집 구하는 다른 사이트도 여럿 띄워서 찾아보기 시작했다. 애간장이 타들어간다. 침대에서 몇 시간을 검색질을 하니 등도 아파온다. 이 집은 다 좋은데 책상이 없는 게 흠이다
그래도 이틀을 꼬박 노트북을 붙들고 검색을 했더니 괜찮은 집이 몇 개 보였다. 그중에 제일 마음이 가는 세 곳에 문자를 보냈다
"다행이다. 일주일 안에 집을 구할 수 있겠어"
원룸이 일반적인 우리나라와 달리 스페인은 방 하나를 빌려서 몇 명의 플랫 메이트와 혹은 집주인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집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같이 살 사람들을 파악하는 것도 그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 물론 마주치고 같이 생활해보지 않고는 알기 어렵지만 말이다. 참고로 집을 구하면서 내가 중요하게, 주요하게 본 것은 아래와 같다
- 가격 : 월 350유로를 max로 잡았다 (관리비 포함)
- 최소 거주 기간 : 대부분 장기 거주자를 선호한다
- 거주 인원 및 나이대 : 너무 인원이 많거나 어린 곳은 피했다
- 화장실 수 : 삶의 질에 중요한 요소이지 않은가
- 흡연 금지하는 집이 맞는지
- 3층 이상일 것
- 엘리베이터 유무
- 배치된 가구 및 와이파이
- 창문 및 채광 : 은근 채광이 없는 집이 많다
- 문 잠금장치 : 사실 없는 경우가 다수다
- 청결도 : 방문해서 반드시 확인할 것!
- 엠빠드로 나미엔또(거주증명서) 처리 가능 여부
그리고 연락을 넣었던 세 집과는.... 거래가 무산되었다
OTL
좌절이다. 진정 이 많고 많은 집 중에 내가 살 곳은 없단 말인가! 하지만 이렇게 우울해하고 있을 틈이 없다. 다시 집 구하기 사이트들을 켜서 미친 듯이 검색을 한다. 아아.....이미 그 세 집이 너무 마음에 들었었어서 다른 집은 통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도 그 와중에 마음에 드는 곳을 차근차근 정리해본다. 아아.... 잊으려고 해도 자꾸 그 집들이 눈 앞에 아른거린다
조금은 씁쓸한 마음으로 차순위로 마음에 들었던 집 다섯 곳에 문자를 보냈다. 나중에 안거지만 진짜 마음에 드는 집이 보이면 문자를 보내는 것보다는 전화를 바로 하고 집을 보러 가는 약속을 잡는 게 좋다고 한다. 사실 이걸 알았어도 당시의 나는 전화를 걸지 못했을 테지만..... (feat. 아기 수준 스페인어)
후안 아저씨네 집
그렇게 추가로 연락을 넣은 다섯 곳 중 두 곳에서 답변이 왔고, 냉큼 방문 약속을 잡았다. 또 부족한 스페인어로 대화를 나눌 것을 생각하니 답답하다. 해외에서의 삶은 하루하루가 도전이다. 시험 준비를 하듯 예상 질문과 예상 답변을 고민해보고, 메모장에 스페인어를 옮겨써 갔다
약속 시간에 맞춰 장소에 가니 아무도 없다. 어라....설마 나 바람맞은건가. 걱정스런 마음으로 후안(Juan)에게 메세지를 넣었다. 1분채 되지 않아 "지금 내려간다"는 메세지를 받고서야 쿵쾅대던 마음이 진정됐다. 곧 길 건너편에 한 사람이 뛰어오는 게 보였다. 180cm는 족히 넘을 것 같은 키때문에 저 멀리서도 잘 보일 수 밖에 없었다. 켄터키 치킨집 할아버지같은 순둥한 인상의 프로필 사진을 봤을 때는 이렇게 키가 큰 아저씨일 거라고 생각치도 못했던지라 움찔했다
"Hola, Juan"
"Hola- vamos"
하나, 인터넷에서 사진으로 봤던 노오란 색의 방은 생각보다, 사진보다 더 예쁘고 아늑했다
둘, 운 좋게 옆방에 사는 아이를 마주쳤다. 나보다 더 깔끔하면 깔끔할 것 같은, 나이대도 나와 비슷해보이는 아이였다. 집주인에게 물어보니 이 집에 사는 사람들은 다들 직장인이라고 한다
셋, 사람 좋아보이는 웃음을 계속 짓고있는 후안 아저씨는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6개월로 거주기간을 생각하고 있다는 내 메세지에 맞춰 계약서 샘플을 준비해온 것이 아닌가! 게다가 도통 그의 스페인어를 잘 못알아듣는 나를 위해 몇 번이나 차근차근히 몸짓손짓을 섞어가며 설명을 해주었다. (후에 그가 대학교 교수인 것을 알았을 때, 그래서 그렇게 인내심 있게 몇 번이나 나에게 설명을 해 줄 수 있었던 것일까-하고 생각했다) 전무후무 스페인 집을 돌아다니면서 이렇게 일을 깔끔하게 처리하는 집주인은 본 적 없다
그렇게 나는 6개월 살 집을 보러 갔다가 바로 "1년으로 갑시다! 콜!"을 외쳤다
집 자체가 마음에 드는 것도 있었지만 집의 위치와 주변 환경도 집 계약을 단번에 결정하게 된 중요한 계기였다. 집이 있는 건물 1층은 은행이었지만(식당이나 바가 아니라는 것, 고로 벌레나 음식 냄새가 덜 꼬일 것이라는 것) 바로 근처에 슈퍼와 상점, 식당과 카페가 있었고 200m만 걸으면 음악당과 공원이 있었다
앞으로 잘 부탁해! 금방 정붙일 것 같은, 내 노란 예쁜 방!
오늘의 스페인어는 인터넷으로 집을 보고, 집을 보러 가고 싶을 때 쓸만한 메세지. 스페인에서 집을 구해야하는 사람이 있다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Hola 집주인! (안녕하세요 집주인)
Soy 홍길동. Envío este mensaje por aquilar la habitación.
(저는 홍길동입니다. 방 렌탈 건으로 이 메세지를 보내요)
Ayer, ví la habitación que habías subido por 이데알리스타 y tengo mucha interesa :)
(어제, 당신이 이데알리스타에 올린 방을 봤고 무척 관심이 있어요)
Por eso quiero visitar al piso para verla cuando tengas el tiempo.
(해서, 시간이 되실 때 방을 보러 집에 방문하고 싶습니다)
Soy coreana y ahora estudio español. Soy organizada y no fumo......
(저는 한국인이고 지금 스페인어를 공부하고 있어요. 정리를 잘 하는 편이고 담배를 피지 않습니다....
- 등 자기소개 겸 어필)
¿Cuando será mejor? A la espera tu respuesta. Mi numero es 000000000.
(언제가 좋을까요? 답변을 기다리겠습니다. 제 번호는 00000000입니다)
Un salu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