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마켓 과일과 채소 코너에서 내 눈길을 끈 것들
스페인 발렌시아에도 겨울이 왔다. 영상 18-19° 정도의 따뜻한 날씨지만 겨울은 겨울이다. 11월이 되고 ‘아직도 여름 날씨 같아’라고는 말하기 어려운 날이 되면서 슈퍼마켓의 풍경도 조금씩 달라졌다. 겨울의 시작임을 알리려는 듯, 한 켠에는 밤도 한 가득 들어왔다
석류(granada)를 참 보기 쉬운 스페인이다. 미녀는 석류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슈퍼에 가면 리얼 석류부터 석류 주스 등이 보인다. 한국에서만 산 나에게는 다소 생소한 풍경이다
그 석류보다 더 생소한 과일이 보였으니.... ‘이게 뭔고’하고 찾아보니 한국에서는 ‘석가’라고 불리는 과일인 듯하다. 석가의 머리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니 모양에 이어 이름이 붙여진 과정까지 모든 게 특이하다
여기서는 chirimoya/치리모야/라고 불리는 이 과일은 딱 이 시즌에만 슈퍼나 과일 가게에서 볼 수 있다. 맛이 궁금해 결국 한 개 사 왔다
‘자기는 그 특유의 맛이 어색하고 싫다’는 남자 친구는 ‘며칠 뒀다 먹는 게 그나마 나을 거라’며 한 마디 조언을 덧붙였다. 그 의견을 따르려는 건 아니었는데 같이 사 온 다른 과일들을 먹다 보니 자연스레 며칠이 지났다
치리모야는 동아시아보다는 동남아시아의 과일을 닮은 맛이었다. 우리가 한국에서 먹는 과일과는 비교하기가 조금 어렵다. 서양에서 한국의 달고 맛있고 촉촉하고 훌륭한 ‘배’를 절대 찾을 수 없는 것과 같다
쓰다 보니 한국 배가 먹고 싶다
놀라웠던 건 감(kaki)가 있던 것! 심지어 짚 앞 슈퍼마켓에는 가끔 이렇게 홍시도 있었다. 보통 홍시는 없고 조금 더 단단한 단감을 판다. 몇 개 사 먹어보니 맛도 우리나라의 것과 같다. 너무 기뻐서 한 동안 감을 줄곧 사 먹었다
밤은 한 번도 사 먹지 않았지만 고구마는 몇 번을 사 먹었다. 스페인에는 고구마를 불리는 여러 이름이 있다. Boniato, Batata, Patata dulce. 모두 ‘고구마’를 가리킨다
슬슬 찬 바람이 불어오니 생각나는 고구마였지만 슈퍼 가판대에 올라온 고구마는 무서울 정도로 크고, 울퉁불퉁했다. 껍질 색도 우리에게 익숙한 색보다는 밝아 주홍빛에 가까웠다. 그렇게 한동안 “고구마 먹고 싶어....”라고 웅얼거리다가(시장에 깔리고, 눈에 보이니 더 생각이 났다) 어느 날 재래시장에서 익숙한 색감과 크기의 고구마를 보고는 기뻐하며 고구마를 샀다
철통에 구운 길거리 고구마 맛은 당연히 낼 수 없고, 우리나라 호박고구마에 비할 수 없는 맛이었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먹을 수 있는 음식에 많은 제한에 걸리고 나서야 나는 ‘먹고 싶은 음식을 먹을 때의 기쁨’을 오롯이 느낄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