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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릭 Oct 25. 2022

일어났는데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새들의 지저귐이 유난한 아침

무거운 눈꺼풀에 힘을 줘 눈을 떴다.

졸음이 덜 깬 눈동자는 초점을 잃어 시야에 담긴 모든 것들이 흐릿흐릿했다.

다시 눈을 감지 않기 위해 버티자 서서히 회복된 시야엔 온통 까만 무언가가 가득 담겼다.


너무 귀여워... 너란 존재...


졸음에 혼탁한 정신을 바짝 차리게 만든 건 귀여움이었다.


졸음이란 이불을 돌돌 말고 잠든 차니의 뒷모습.

미처 정리하지 못한 채 널려져 있는 한쪽 귀.


핵. 졸. 귀.




차니와 같은 자세로 누워있던 나는 차니가 깨지 않게 조심스레 손을 뻗어 머리맡을 더듬거렸다.

이내 손끝에 걸린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90도로 펼쳐 든 휴대전화의 카메라 아이콘을 스윽 밀어 올렸다.

조용히 켜진 카메라 화면을 차니의 뒤태에 맞추고는 촬영 버튼을 눌렀다.


찰칵


게 흘러나온 촬영음에 차니의 오른쪽 귀가 움찔거렸다.


깨면 안 되는데!!!


급해진 마음에 다급히 촬영 버튼을 눌렀다.


차니의 움찔한 귀가 펄럭이더니


바짝 세운 두 귀와 동시에 앞 발을 쭉 뻗어 기지개를 켜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안돼!

귀여운 거 오래 보고 싶어!!

깨지 마!!!


소리 없는 아우성을 속으로 내지르며 촬영 버튼 더욱 빠른 속도로 눌러댔다.


금방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듯 온 힘을 다하여 기지개를 켜던 차니의 몸이 툭! 하고 힘을 뺐다.

하품을 크게 내뱉은 차니는 이내 고른 숨을 내쉬며 다시 잠에 빠져 들었다.

여전히 왼쪽 귀를 널은 채, 다시 잠을 온몸에 똘똘 말았다.


자는 거 너무 귀여워서 깨면 안 된다고 조심하던 나는 어디 갔을까.


다시 잠든 뒤태가 두 배, 세 배, 네 배는 더 귀여워서 나는 몸이 베베꼬였다.

결국 참지 못하고 차니를 덮쳤다.


아이, 이뻐! 내 새끼, 이뻐!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팡팡 치면서 자는 얼굴에 뽀뽀세례를 퍼부었다.


자다 봉변을 당한 차니는 하얀 눈동자가 보일 정도로 크게 눈을 뜨고는 짓눌린 몸을 움직이지 못한 채 곁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주둥이를 잡아 코에 뽀뽀를 하고, 양 뺨의 풍성한 털이 짜부가 되도록 얼굴을 부비부비 했다.

뽀뽀+부비부비와 동시에 왼손은 머리를 쓰다듬고, 오른손으로 뜨끈한 아랫배를 쓰담 쓰담하는 초멀티플레이를 시전 했다.


참다못한 차니는 네 다리를 버둥거리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에취! 재채기를 하며 온몸을 부르르 떨어 정리를 한 차니는 살짝 열려있는 화장실 문을 코 등으로 열고 들어가 모닝 소변을 시원하게 보았다.




내 새끼들과 함께 하는 날이 많아질수록 나에게는 결핍되는 한 가지가 있다.


인내심.


시간이 갈수록 더 예뻐지는 내 새끼들은 향한 나의 애정은 애정질 욕구를 컨트롤하기 힘들 정도로 커져서 시도 때도 없이 아이들을 덮치게 된다.

편히 쉬고 있고, 편히 자고 있는 아이들을 배려해야 하는데 이미 발동된 애정질 욕구를 진정시킬 수 있는 인내심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큰일이다.


진정해! 진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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