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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릭 Feb 22. 2023

길 위의 이쁜이들

요즘 내 가방 속 필수품은 고양이용 츄르다.


무인 애견용품샵에서 다섯 개 들이 한 봉지 당 2천 원에 파는 것을 늘 두 봉지씩 사서 가방에 쟁여둔다.

 매일 회사 건물 앞에서 이쁜이들을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어리고 예뻤던 어미 고양이는 사무실 책 창고 안에서 두 번의 출산을 했다.

첫 출산엔 다섯 마리를, 두 번째 출산엔 여섯 마리의 새끼를 품에 안았다.

모성애가 어찌나 강했는지 우리가 마련해 준 상자 안에서 새끼를 낳고 키우다가도 한 번씩 책 선반 구석 진 곳에 아가들을 숨기느라 바빴다. 하지만 항상 빠른 시간 안에 아가들을 찾을 수 있었다. 야옹 야옹 엄마 찾아 울어대는 아가들의 울음소리는 숨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름에 태어나 더위에 눈병이 난 아가들을 안고 동물병원에 가서 약을 받아 와서 먹이고 닦이고...

엄마 고양이가 해줄 수 없는 일을 내가 해 줄 수 있음이 행복했고, 그래서 더욱 정성들여 아가들을 케어했다.

정성들여 돌봐주던 아가들은 시간이 흘러 어설프지 않은 걸음걸이와 날랜 몸짓에 익숙해질 무렵이 되면 길고양이의 길을 찾아 떠났다.

어디로 갔는지 궁금하고, 포슬포슬한 털뭉치들의 보드라움이 몹시 그리워질 무렵이 되면 마치 고향집을 찾아오듯 녀석들이 모습을 보이곤 했다.

반가운 마음에 뭐라도 챙겨주고 싶었지만 야생에 길들여진 고양이들은 사람의 손길을 극도로 거부했다.

하여 마냥 기특한 눈길로 녀석들을 바라보기만 했더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뭉쳐다니던 녀석들 중 더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아이들이 생겨났다.

그렇게 하나 둘씩 사라지더니 결국 어미도 사라지고 삼색이 언니 냥이와 삼색이 동생 냥이 두 녀석만이 회사 앞을 지키게 되었다.



마치 Ctrl+C 해서 Ctrl+V를 한 것 마냥 똑 닮은 두 녀석은 함께 움직이고 함께 머물렀다.

기가 세고 당당한 아가 삼색이와 섬세하고 새초롬하면서도 엄마 닮아 모성이 강해 동생 챙기기에 분주한 언니 삼색이는 서로를 의지하며 긴 겨울을 무사히 견뎌냈다.


녀석들이 긴 겨울을 무사히 지낼 수 있길 바라며 건넨 간절한 나의 기도는 츄르였다.

따숩게 품 안에 품고 내 집 고양이로 키울 수 없는 형편이라 미안한 마음이 커서 더 절절한 마음으로 아침, 점심, 저녁 기도하는 마음을 가지고 녀석들에게 츄르를 줬다.

간절함이 통했는지 삼색이 고양이들은 길고 추운 겨울날을 감기 같은 잔병치레 한 번 없이 잘 견뎌냈다.

기특하고 고마웠다.


봄 냄새가 살짝씩 나기 시작하는 요즘도 고양이들은 늘 그 자리, 그 시간에 나를 기다린다.


"삼색아~."


하며 부르면 고개를 살짝 갸우뚱하며 애교스런 몸짓으로 "아옹~"하고 대답한다.


"츄르먹자."


하면 동생 삼색이가 작고 날랜 몸짓으로 잽싸게 내 앞에 앉아 작은 솜방망이로 내 손을 톡톡 치며 츄르를 달라고 보챈다.

욕심많은 동생 삼색이에게 츄르를 짜서 먹이면 맘이 급해 냥냥 씹기도 하고 냥 펀치로 츄르를 혼내기도 하면서 씩씩하게 먹는다. 그런 동생에게 얌전히 츄르를 양보한 언니 삼색이는 한 걸음 뒤에서 조용히 앉아 동생 삼색이가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본다.

한 봉지 더 따서 언니에게 먹일라치면 어느 샌가 동생 삼색이가 달려와 언니와 츄르 사이에 주둥이를 드밀고 뺏어 먹기 일수다.

하여 요즘은 동생 삼색이 앞에 츄르를 잔뜩 짜주고 언니 삼색이에게 츄르를 먹이는 꾀를 쓰고 있다.


얼마나 오랜 시간 녀석들과 함께 할 수 있을지 알 수는 없다.

눈 앞에 보이는 녀석들과의 순간 순간이 마지막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퇴근길 츄르를 먹이고 돌아서며 또 한가지의 청을 신께 드려본다.

내 가방 안의 츄르가 있는 한 녀석들을 계속 볼 수 있게 해 달라는 청을 말이다.


내 가방이 화수분이길.

가방 안에는 늘 츄르가 준비되어 있고, 그런 나를 반기는 녀석들을 오래오래 볼 수 있길.


오늘도 나는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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