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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릭 Sep 15. 2022

아빠의 정성이라는 비법.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 밤 방문 틈으로 스며드는 고소한 냄새를 견디는 건 고문이었다. 책 속 글자가 눈에 들어올 리 만무, 결국 빼꼼 방문을 열어 부엌을 살폈다.


달그락, 달그락….


프라이팬을 긁는 뒤집게 소리와 함께 노릇하게 익은 식빵이 배를 드러냈다.


아빠는 엄마가 쓰기 쉽게 소분해 둔 버터 말고 듬뿍 뜬 마가린을 녹여 식빵을 노릇 촉촉하게 구웠다. 이유는 단순했다. 더 고소하고 느끼해서였다. 닭볶음탕을 먹을 때도 닭 껍질을 선호하고, 김치찌개 속 돼지고기도 비계 가득한 부위를 좋아하는 아빠의 취향상 당연한 것이었으리라.


아빠표 식빵에는 키포인트가 있었다. 갓 구운 식빵에 황설탕을 살살 뿌려 녹이는 것이었는데, 고소함에 더해지는 달콤함은 만족감을 배가시키곤 했다.


아빠의 토스트가 거기까지 진행되면 나는 더 이상 인내하지 못했다.


방을 나와 잰 발걸음으로 켜켜이 쌓인 토스트로 향했다.


하지만 다짜고짜 토스트에 손을 데는 경솔함을 범하지 않았다. 토스트를 곁눈으로 훑으며 냉장고 문을 열어 우유를 꺼내고 컵을 식탁 위에 세팅하는 신중함을 보였다.


한 봉지 가득했던 식빵을 모조리 구워내고 나서야 식탁에 자리한 아빠는 컵에 우유를 따라 건네자 토스트를 집는 것과 동시에 호로록 우유를 들이켜는 것으로 야식의 시작을 알렸다.


바삭바삭한 토스트 저작에 열중하다 보면 어느새 곁을 메운 식구(食口)들이 즐거움을 함께 했다. 그 순간, 우리 사이엔 활발히 오가는 대화 없이 적극적인 소통과 공감이 이루어지는 흥미로운 경험을 했더랬다.


"살찌겠다."


포만감에 흡족한 마음이 들 무렵, 어김없이 찾아드는 죄(?)책감을 일깨우는 건 엄마의 한마디였다.


당신도 맛나게 드셨으면서 툴툴 내뱉는 그 한마디는 늘 후식처럼 뒤따랐다.


하지만 우리에겐 큰 무기가 있었다.


성.장.기.


우리의 항변은 이러했다.


고등학생인 맏언니는 167센티의 늘씬하게 뻗은 키가 밥통째 끌어안고 식사를 한 자신의 식습관 때문이라고 주장을 했고, 둘째인 나는 아빠 닮아 작은 키가 크려면 잘 먹고 찌워서 키로 보내야 한다고 우겼다. 극심한 중2병 투병 중인 셋째 여동생은 새침하게 깨작일 뿐이었고, 넷째 남동생은 엄마의 잔소리를 귀에 넣을 여유도 없는지 토스트 위에 마요네즈까지 짜서 올리며 먹는 것에 열중했다.


그런 우리를 보며 아빠는 보이지 않게 웃고 계셨다.


껴안은 몸 사이로 틈이 안 보일 정도로 비비적거리는, 세상 달콤한 애정표현과는 거리가 먼 분이셨지만 늘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로 조용히 지켜보는 그 시선은 늘 따뜻했다.


늘 거기에 계실 것 같았던 아빠는 지금 우리 곁에 없다.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고 4개월의 투병 끝에 귀천하시어 하루도 빠짐없이 사랑하시던 하느님의 곁에 머물고 계신다.


아빠는 호스피스 병동 간호사 선생님들에게 “천사 베네딕도 씨”라고 불리곤 했다.


섬망이 와서 인지가 오락가락하시던 중에도 간호사 선생님들과 수녀님들이 “베네딕도 씨~”하고 부르면 아이처럼 웃으며 “네~!”하고 맑은 대답을 하셔서 지어진 별명이었다.


아빠의 통증은 통증 완화치료를 받으며 다스릴 수 있었다. 하지만 늘 달고 살 수밖에 없는 항생제와 진통제로 인해 약해진 면역은 장에 트러블을 일으켰고 그로 인해 일체의 음식물 섭취가 금지되었다. 한 달 가까운 기간 동안 입으로 섭취 가능한 음식은 설탕이 가미된 보리차뿐이었고, 귀천하시기 전 2주 동안은 그것마저도 허용되지 않았다.


힘겹게 숨을 들이켜고 내쉬느라 거칠어진 입술과 마른 입안을 멸균된 물로 적신 가제로 적셔드리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적신 가제로 입술을 축여드리며 말을 잃은 아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맛있는 거, 그렇게 좋아하시던 달고 고소한 토스트, 그거 하나라도 드시고 가시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애달픔이 생겼다.


“미안해, 아빠.”


무심코 내뱉은 말에 울음이 끓어올라 참을 수 없었고 나는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아빠를 보내고 몇 달쯤 지났을 무렵,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아빠가 꿈에 나타났어.”


동생의 꿈은 이러했다.


동생은 어린 시절 재건축 전의 아파트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4층에 위치한 집의 현관문을 열자 눈부시게 뽀얗고 맑은 배경의 거실이 보였고 부엌 쪽에서 뭔가 인기척이 느껴졌는데 소리를 따라 시선을 옮기자 가스레인지 앞에 선 누군가가 보였다.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뒤돌아 보며 환하게 웃는 그 사람은 아빠였다.


“아들 왔어?”


온통 뿌연 시야 때문이었는지 그리웠던 목소리 때문이었는지 멍하니 서 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노릇하게 구워진 토스트가 접시에 쌓여있었다.


“토스트 먹을래?”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동생은 토스트를 바라보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빠는 다시 팬으로 시선을 돌려 버터 조각을 잘라 넣고 식빵을 굽는데 열중을 했다. 그런 아빠를 바라보면 다시 기분이 멍해진 동생의 시야가 점점 흐릿해지면서 아빠의 모습도 같이 흐릿해졌다.


아빠를 놓칠까 봐 서러워진 동생의 눈에서 눈물이 치솟더니 참을 새도 없이 흘러내렸다.


한바탕 눈물이 지나간 시야 틈으로 또렷하게 아빠가 보이자 안심이 든 동생은 밝디 밝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아빠를 바라보았다. 평화롭게 토스트를 굽고 있는 건강한 아빠가 그 안에 있었다. 동생은 행복해서 웃음이 나왔다. 한결 여유로워진 마음에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자 청량한 공기가 색으로 표현된 듯 파란 풍경이 창밖에 펼쳐져 있었다. 어찌나 파란지 눈이 시큰하더니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리고 늘 그랬듯이 참을성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주책없이 흘러내린 눈물을 거두니 문득 아빠가 더 보고 싶어 져서 시선을 돌리니 그 자리에 아빠가 여전히 있었다. 동생은 행복해서 울음이 나왔다.


그렇게 울다 깬 동생은 마음이 좋았다고 했다.

가장 건강하고 평화로운 순간에 아빠가 머무르고 계신 듯해서 안심이 되었다고 했다.


꿈 얘기를 듣는 나도 그제야 마음이 놓여서 울고 웃었다.


나는 가끔 토스트를 굽는다.


아빠가 알려주신 그것대로 구워본다.


하지만 살찜을 고민했던 성장기의 토스트만큼 맛난 토스트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비법의 하나가 빠졌기 때문이다.


아빠의 정성이라는 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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