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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릭 Mar 01. 2024

04, 선생님! 결국 저는 행복해지나요?!


신촌기차역 뒤쪽 상가 거리에 사주카페가 있었다.

2층에 자리한 사주카페는 낡은 건물만큼이나 낡은 목재가 삐걱삐걱 소리를 내는 계단을 밟고 올라가야 했다.

붉은 패브릭 시트가 강렬한 의자와 올드한 브라운 색의 나무 탁자가 세트로 나름의 규칙대로 자리한 카페 안은 꽤 넓고 낡았다.


"어서 오세요."


카운터의 직원이 건조한 얼굴에 친절한 말투로 맞이했다.


"사주 보시러 오셨어요?"


나와 친구는 다소 수줍게 "네." 하고 대답했다.


"앉아서 기다리고 계시면 선생님 오실 거예요. 지금 사주 보고 계시거든요. 편한 자리에 앉으세요."


습관처럼 창가자리를 찾아 앉은 우리는 마치 목욕탕 카운터의 쪽창처럼 작은 창문에 당황하였지만 그래도 깨끗하게 유지되어 있는 창으로 인해 밖을 선명히 볼 수 있음에 애써 위안을 했다.


..........


마흔이 넘어서도 혼자인 친구와 마흔이 넘어서 혼자가 된 나는 자주 만나 놀았다. 

친구는 프리랜서 번역가였고 나의 일터는 광화문이라 시간이 날 때마다 북촌, 서촌의 맛집과 예쁜 카페와 소품샵을 돌아다니며 놀았다.

신세 한탄도 하고, 학창 시절 얘기에 까르륵까르륵 숨 넘어가게 웃기도 하고, 애정이 통한 아이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들뜬 몸을 부르르 떨기도 했다.


"우리 점 보러 갈래?"


내가 권했는지 친구가 권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우린 권했고 동의했다.

찐으로 사주집을 가기가 조금 부담스러웠던 우리는 조금은 접근이 편한 사주카페를 가기로 결정했다.


..........


"안녕하세요."


중년의 남자 선생님이 펜과 종이, 노트북을 들고 우리의 맞은편에 앉으셨다.


"누구 먼저 하시겠어요?"


딸린 자식 없어서 본인만 보면 되는 친구가 먼저 하기로 했다.

생년월일시를 알려드리자 현란한 손놀림으로 종이 위에 무언가를 적어낸 역술가 선생님은 노트북을 켜서 뭔가를 입력하셨다.


"장군의 기를 가지고 태어나셨어요."


역술가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친구는 장군의 기를 가지고 태어나 강해도 너무 강해서 남자운이 없다 했다. 게다가 남자가 해가 되는 사주라 했다. 결혼운도 자식운도 없단다. 만약 결혼을 한다면 평생 눈물로 살거라 했다. 본인 스스로를 챙기고 일하며 그렇게 사는 게 맞다 했다. 사실 친구는 남자와 결혼이 본인 인생에 도움이 1도 안 된다는 이야기를 처음 듣는 게 아니었다. 어려서 부모님이 자주 가던 절의 스님이 이 아이는 결혼을 시키지 말라고 했단다. 결혼을 하면 흉한 일들이 많아 불행해지니 혼자서 잘 살게 하라 했단다. 친구는 역술가 아저씨의 사주풀이를 장군처럼 든든한 자세와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담담히 받아들였다.


이어 나의 차례가 되어 생년월일시를 선생님께 알려드렸다.


"50 넘으면 남편이 정신 차리고 돌아와서 엄청 잘해줄 거예요. 그리고 그냥 시아버지와 함께 계시는 것이 좋아요. 아버님 그늘에 갇힌 거 같은 느낌에 답답할 수 있지만 보호해 주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버님 곁에서 함께 하세요. 그런데 아버님이 아프실 수 있을 거 같거든요. OO에서 OO때쯤. 잘 살펴보세요."


역술가님이 사주풀이를 마치고 당신을 기다리는 다른 테이블로 이동했다.


"50 되면 너한테 엄청 잘해준다고 하니, 기다려 봐야 되는 거냐?"

"미쳤냐?"

"ㅎㅎㅎ 사람이 좋게 변하려나 보지.ㅎㅎㅎ"

"아 몰라!"


사주 듣느라 식어버린 커피를 들이키며 친구와 나는 밀린 잡담을 시작했다.


..........


용하게라고 말을 하는 게 맞는 건지 어떤 건지 모르겠지만, 역술가 선생님이 말씀하신 그 시기 즈음에 아버님은 병을 얻으셨고, 세상을 떠나셨다.

하지만, 

역술가 선생님의 말씀과 달리 나이 50살부터 엄청 잘해줄 거라는 그 사람은 50살의 끝무렵에 나를 다시 떠났다.


"잘 생각해 봐. 이건 너한테도 잘 된 일이야. 그러니까 너무 속상해하지 마. 좋게 생각해."


그의 말을 해석해 보자면 어차피 50이 넘어도 60이 넘어도 나를 만족하지 못하는 그는 다른 만족을 찾아 나설 테니 그냥 이르게 각자의 길을 다시 찾는 것이 유익하다 그것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보면 50살에 결국 나를 다시 놔준 그는 나에게 엄청 잘해준 것이 맞는 것인가? 

결국 역술가 선생님은 매우 용하셨던 것인가?!


이런 어이없는 정신회로를 돌리며 나는 헐헐헐 웃어버렸다.


..........


선생님! 결국 저는 행복해 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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