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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릭 Apr 20. 2024

진부한 변화

머리를 짧게 잘랐다. 아주 짧은 숏컷으로.


심리적 변화를 대놓고 드러내는 진부한 표현방식 중 하나지만 이것만큼 속이 시원해지는 것도 없다.


아침을 먹지 않고 출근하여 배가 몹시 고팠지만 나는 12시 10분 전에 근처 프랜차이즈 미용실에 예약을 하고 12시가 되자마자 그곳으로 향했다.


"지금도 기장이 짧으신 편인데, 조금 다듬는 쪽으로 할까요?"


"아니요, 귀가 반 정도 보이게 짧게 잘라주세요."


"그럼 너무 보이쉬해 보일 거 같은데, 괜찮으세요?"


"네, 괜찮아요."


최종 승인을 받은 헤어디자이너는 머리에 에센스 워터를 골고루 뿌리며 빗질을 한 후 구역을 나눠 커트를 시작했다.


숭덩숭덩 거침없이 잘리는 머리카락이 바닥을 거뭇하게 덮었다.

나는 스르륵 눈을 감고 헤어디자이너에게 내 머리를 맡겼다.


긴 머리를 하지 않은 지, 아니, 하지 못한 지가 맞겠다. 정정한다. 하지 못한 지 30년이 넘었다.


20살의 어느 날, 실연으로 인한 심경의 복잡함을 풀고자 무작정 미용실을 찾아 숏커트를 한 이후 나는 머리를 길게 길어본 적이 없다. 기껏 참고 길어도 짧둥한 단발 정도였다.

그래서 결혼식 때도 전통혼례에 어울리는 올림머리를 위해 쪽머리 가채를 얹어 헤어를 완성했더랬다.


긴 머리를 하지 못하는 첫 번째 이유는 참을성 부족이었다.

짧은 머리에 적응이 되다 보니 조금이라도 길어지면 답답증이 생겼고 길어진 머리카락의 부피 때문인지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이 배는 더 많아 보여 불안하기도 했기 때문에 기어이 참지 못하고 머리를 쳐내었다.


두 번째 이유는 처량함이었다.

왠지 긴 머리를 한 나는 처량해 보였다. 동그랗고 흰 얼굴에 길게 머리를 드리우면 살짝 처진 눈매가 3미리는 더 처져 보이고 입꼬리 또한 드리워진 머리의 끝단을 따라 쳐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머리를 묶으면 당겨진 모근에 통증과 더불어 두통이 생겼다. 해서 나는 심신의 우울감으로 긴 머리가 꺼려졌다.


그리하여 나는 30년가량 숏헤어를 고수해 왔다. 거의 비슷한 헤어상태를 유지했다.

하지만 이번엔 이제까지와 다른 차원의 숏헤어였다.

훅 파인 귀와 거침없이 쳐올려 잘라낸 뒷머리가 손가락 끝으로 잡힐 만큼 짧았다.


"자르고 보니 짧은 머리가 더 잘 어울리시는 것 같아요."


얼굴에 붙은 잘린 머리카락들을 스펀지로 살살 털어내며 디자이너는 거울로 내 헤어상태를 확인했다.


"그러게요. 속이 시원하네요."




나는 이제껏 유지해 왔던 것들을 놓고 새롭게 시작하려고 한다. 아니 새롭게 시작해야만 한다.


이제껏 유지해 왔던 결혼생활을 타의에 의해 자의적으로 내려놓았고,

이제껏 유지해 왔던 헤어스타일을 자의에 의해 타인의 솜씨로 변화시켰다.


그리고 이젠

이제껏 유지해 왔던 내 마음을 자의에 의해 자의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더는 청승맞은 긴 머리에 미련을 갖지 않고

보이쉬한 짧은 머리로 변화에 겁 없이 덤벼보겠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내도 쿨하게 받아들이겠다.


인생 한 번 살지 두 번 사는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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