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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릭 May 15. 2024

05.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

그가 떠나고 아이들은 어렸던 그 시절,      

유난히 어두운 밤이면 핸들을 잡고 싶은 욕구가 치솟았다.     


이별 초창기엔 불면에 심해지는 심적 고통을 이기지 못해 혼자 차를 몰고 어디든 가서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에 심야운전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고통을 조금 무디게 겪어낼 수 있을 때 즈음에는 심신을 짓누르던 긴장을 늦추기 위해 사람도, 차의 흔적도 드문 시간을 택해 느릿하게 눈치 볼 것 없이 도로를 달렸다.     

그럴 때면 나는 운전하면서 절대 하지 않는 한눈도 팔아보고 창문을 열어 차가 내는 소리를 조용히 경청하곤 했다.     

까만 밤, 어두운 도로 위를 달리고 있자면 간격이 일정하게 심어진 가로등이 반짝거리며 뿜어내는 불빛이 마치 별빛인 양 고왔다.     


어느 날, 뒷 자석에 조용히 있던 둘째 아이가 중얼 중얼 혼잣말을 했다.     


“이십칠, 이십팔, 이십구...”     


한참을 중얼거리던 아이의 소리가 잦아들었다.     


“지금 뭐라고 한 거야?     


씨익 웃던 아이가 다시금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거두며 운전석 쪽으로 바짝 붙었다.     


“엄마, 차 타고 갈 때 핸드폰 보면 멀미나고 그냥 있기 심심하거든. 그럴 때 뭐하는 줄 알아? 가로등이 몇 개 인가 세어본다.”     


“그래서 다 세어봤어?”     


“아니, 세다 보면 졸려서 자. ㅋㅋㅋ”     


아이의 허무한 대답에 소리 내어 웃음을 쏟아냈다.      


웃음이 잦아들 즈음 백미러로 뒷 자석의 아이들을 바라봤다.     


허옇고 포동하게 살이 오른 첫째는 살짝 벌어진 입 사이로 숨을 고르며 잠이 들어있었고, 둘째 아이는 창밖으로 시선을 두고 희미하게 미소 띈 얼굴로 소리 없이 가로등을 세고 있었다.      




그 시절, 매 순간이 멀미에 시달릴 만큼 심신이 고통스러웠던 그 때.     


아이는 가로등 불빛을 세며 힘든 마음을 희석시켰고, 나는 까만 밤을 달리면서 낯선 공기를 시원하게 들이마시는 것으로 고통을 희석시켰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이 그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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