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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릭 May 18. 2024

혐오의 시대

오래간만에 초딩 베프들과 모임을 연남동에서 가지기로 했다.


분위기 좋은 곳에서 맛난 브런치와 커피를 마신 후 연남동 공원을 걸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찢길 듯 시끄러운 고성이 들려 주변을 살펴보니 아주머니 두 분이 싸우고 계셨다.

돌벤치에 애완견을 안고 계신 아주머니를 향해 거침없는 삿대질과 고성을 날리고 있는 아주머니와 그런 아주머니에게 격하게 저항하는 견주아주머니의 음성은 매우 공격적이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중 더욱 격해진 감정을 지인에게 제지당하며 내지른 아주머니의 한 마디가 선명히 귓가를 찔렀다.


"아니! 개새끼를 집에서 재우면 되지 왜 밖에까지 데리고 나와 재우냐고! 개가 애야?! 사람이야!"


아주머니 품에 안긴 작고 하얀 몰티즈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인과 낯선 이의 싸움 사이에 끼여 있었다.


욕설까지 번진 두 분의 싸움을 먼발치서 지켜보다 한숨을 내쉬며 발걸음을 옮겼다.


결국 개에 대한 시비구나.


요즘 나는 미안하게도 우리 강아지들과 외부산책을 잘 나가지 않는다.

개들을 위해서 이래선 안 되는 줄 알지만 산책 시 숱하게 마주치는 억울한 눈빛들(개를 향한, 나를 향한 경멸 또는 멸시의)이 넘쳐서 무시할 수 있는 정량이 넘어버렸기 때문이다.

나무 아래 킁킁 풀냄새와 친구들 냄새를 탐색하는 우리 강아지를 보며 지나가던 아저씨가 나와 개를 번갈아 흘겨보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을 때, 나는 참던 설움과 화가 폭발하여 크게 소리 내 말했다.


"아니, 도대체 아무것도 해로운 짓을 안 했는데 왜 저래? 왜 고개를 흔드는데?!"


경멸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젓던 아저씨는 흠칫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떴다.


그때 이후로 나는 복층 넓은 테라스에서 광합성을 하는 시간으로 강아지들과의 산책을 대신하고 있다.


어느 순간, 인간 혐오로 묻지 마 살인이 일어나서 사회의 공포를 자아냈다.


그러더니 요즘은 강아지 고양이들에 대한 혐오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멀쩡히 걷는, 얌전히 자는, 그저 그 존재 자체에 대한 공격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이게 모 프로그램이 빚어낸 촌극인지, 아니면 가슴에 쌓인 스트레스를 약한 무엇을 짓밟음으로 풀어내는 못난 몇몇의 인간들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한 가지는 알겠다.


제발 인간답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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