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생이 작은 간을 가지고 태어난 쭈니는 동배 누나들보다 작았다.
덕분에 깜찍한 몸체와 어미로부터 물려받은 미모가 더해져 반할 수밖에 없을 만큼 예뻤다.
예쁜 미모만큼이나 우아한 몸짓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유난히 길고 가는 다리를 일자로 쭉 뻗고 사뿐사뿐 걸을 때면 마치 하이힐을 신은 모델의 워킹 같았다. 쭈니는 그런 우아함을 뛸 때도 잃지 않았다. 흰 갈기를 휘날리며 초원을 뛰는 백마처럼 슈나우저 고유의 은빛 수염을 날리며 또각또각 뛰었다. 그런 쭈니를 보며 나는 외치곤 했다.
“회전목마냐!”
작은 간은 예쁜 미모와 동시에 약한 몸을 주었다.
미리 들여다보고 알 수 있었다면 어려서 체력이 좋을 때 수술로 고칠 수도 있었을 텐데, 무지한 나는 잘 놀다 한 번씩 토하는 쭈니를 그저 소화기관이 약한 아이라 생각했다. 퇴근하는 나를 보며 반갑게 달려오다 사지에 경련을 일으키며 비명과 함께 발작하는 아이를 안고 병원을 가는 단계에 이르러서야 나는 쭈니의 병을 알게 되었다.
쭈니는 소간증이라 했다.
워낙 간이 작아 온전히 기능할 수 없었지만 어릴 땐 싱싱함으로 버틸 수 있었던 간은 나이가 들어 버팀의 끝에 다다르자 간부전에 이르렀고, 해독되지 못한 암모니아가 뇌로 침투해 간성뇌증을 유발했다.
2022년 4월, 결국 시한부를 선고받았다.
1년에서 2년의 기한을 선고받고도 3년째를 살고 있는 쭈니는 이제 떠나려 하는 것 같다.
뇌를 괴롭히는 암모니아를 조절하는 약을 한계치까지 올려서 투약했지만 암모니아 수치는 오히려 약을 먹기 전보다 높아져 최고치를 찍고 있고 통제되지 않는 몸은 비틀거리고, 넘어지고, 여기저기 부딪힌다. 좋아하는 까까를 먹기 위해 입을 벌리는 것도 쉽지 않고, 까까를 무는 이빨의 힘 조절도 되지 않아 내 손가락을 수시로 문다.
그리고 어제, 쭈니는 힘없이 늘어져 누워 100세 노인의 기침 같은 소리를 내며 쿨럭거렸다. 숨이 답답한지 벌려진 입은 닫히지 않고 침이 줄줄 흘러내렸다.
“○○아! 이리 좀 와봐!”
제 방에서 쉬던 아들을 불렀다.
“쭈니가 며칠 째 이렇게 가래 낀 거 같은 기침을 한다.”
애써 덤덤히 말하려 했으나 말끝에 울음이 튀어나왔다.
“너무 힘들까? 쭈니? 보내줘야 하나? 어떻게 하지?”
엉엉 울면서 아들에게 물었다.
쭈니를 쓰다듬으며 아들은 나와 함께 울었다. 그저 울기만 할 뿐 내 물음에 답하지 못했다.
멀찍이 떨어져 앉아 우는 우리와 아픈 쭈니를 번갈아 지켜보던 차니는 무겁고 느린 발걸음을 옮겨 중문 앞에 앉아 현관을 바라보았다. 마치 쭈니가 가지 못하게 문을 지키고 있는 것처럼, 그랬다.
조용한 새벽, 나는 쭈니 귀에 수도 없이 사랑을 고백했다.
이뻐, 사랑해, 귀여워, 소중해...
그러다 깨달았다.
쭈니에게 내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다는 걸.
쭈니가 내 이름을 모른다는 걸.
“쭈나, 엄마 이름은 ○○야. 엄마 이름은 ○○○야. 알았지? 기억해?”
가는 숨을 이어가며 잠든 쭈니의 귀에 속삭였다.
귀가 먼 나의 늙은 강아지는 내 이름을 알아들었을까?
쭈니에게 나의 이름은 작별인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