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대로 걷고, 상상하기, 깨닫기
둘째날,
전날 과음을 해 몸은 지쳐있었지만, 해외라는 장소의 특수성은 나를 움직이게 한다.
여기까지 왔는데, 침대에만 누워있을 수는 없었다.
몸을 일으켜 대충 씻고 호치민의 관광 필수라고 불리는 벤탄시장을 갔다. 여러 관광상품과 잡다한 물건들을 파는 시장이었다. 그곳은 묘한 냄새와 향기가 공존했다. 우기의 끝자락에 베트남에 방문했기에 비 비린내와 무언가가 썩어가는 악취가 나기도하고 몇걸음 옮기면 향긋한 꽃 냄새가 났다.
따뜻한 나라이기에 꽃이 많이 피는지 길거리에 꽃 가게가 유독 많다. 베트남에서 살면 꽃선물을 많이 주고 받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얼마 전 지인의 생일날 어떤 선물을 줄까 고민하다가 꽃가게에서 꽃을 산 기억이 있다. 꽃은 다른 선물에 비해 가성비가 상당히 떨어지는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비싼데다가 빨리 썩고 처치곤란인 예쁜 쓰레기라고 여겼다. 그런데 막상 꽃을 사고나니 기분이 오묘했다. 이 꽃을 받고 좋아할 지인의 얼굴이 기대되기도 하고, 그 꽃을 들고 길거리를 걷는데 꽃에서 올라오는 향기가 은은하게 풍기며 소중한 설렘이 올라왔다. 그런 의미에서 꽃은 사는 이도 받는 이도 기분이 좋아지는 마법같은 존재다.
친구의 집에서 보았던 다국적의 전 남친들로부터 받은 수 많은 꽃들이 떠오르며 베트남 사람들의 연애스타일을 상상해보았다. 베트남 사람들은 이성친구에게 "지나가다가 너 생각이 나서 샀어"라며 꽃을 많이 건넬 것 같다. 그 상상에 꼬리를 물어 '베트남 남자는 로맨틱하겠다'라는 생각을 하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나왔다. 얼마나 좋을까. 호치민은 길거리에 많은 꽃가게가 있기에 작정하고 꽃가게를 찾아나서지 않더라도 “오다 꽃 하나 주었다”가 가능한 도시였다. 낭만의 도시였다.
셋째날→
호치민 여행은 정말 무계획이었다. 친구가 가자는 곳에 오케이를 연신 외치며 다녔다. 실은 이곳에 오기 전 친구가 푸꾸옥이라는 섬에서 열리는 2박 3일의 살사페스티벌을 가자고 했다. 댄스스포츠 가닥이 있던 나는 별거 있겠나 싶어서 생각없이 오케이를 외쳤고, 비행기+호텔+페스티벌입장료로 45만원을 추가로 지불했다.
호치민 구경을 끝내고 나는 친구와 함께 살사페스티벌에 참여하기 위해 푸꾸옥에 왔다. 푸꾸옥은 베트남 남쪽에 있는 섬으로 예쁜 바다 휴양지다. 아직 한국인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조만간 휴양지로 큰 인기를 끌 것 같다. 푸꾸옥도 그 인기의 징조를 눈치채고 군데군데 리조트, 상가 등을 건설하고 있었다. 아마 3~5년 후에 푸꾸옥을 다시 오면 많이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것 같다.
푸꾸옥에 온 목적은 살사페스티벌이었다. 이곳에서 살사를 배우고 추며 스스로에 대해 새삼 깨달은 부분이 있다. 살사는 즉흥성이 강한 장르다. 남자의 리드로 여자가 그 스텝과 호흡에 맞춰 춤을 춘다.
바로 이 점이 살사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가장 꺼려지는 부분이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맞추는 성격이 아니고, 타인과 무엇을 함께 하는 법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이 춤이 정말 어려웠다. 나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는데 살사를 추면서 다시금 깨닫게 되는 게 됐다. 그 점을 늘 고치고 싶었던 차에 살사를 추면 좀 고쳐질까 싶어 열심히 췄다.
그런데 또 하나의 문제점에 봉착한다. 파트너와의 거리가 너무 가깝다는 것. 나는 사람과의 안전거리에 예민하다. 만원 지하철, 버스에서 기분이 늘 불쾌해지며,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침대에서 같이 잠을 자는 것은 꺼려진다. (물론 남자친구는 예외다) 살사는 낯선 이와 밀착해 춤을 추며 호흡하는 춤이다. 참고 상대의 호흡에 맞추려고 노력하지만, 파트너가 나와 밀착해 리드하려 할 수록 숨이 막혀서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2박 3일의 일정동안 살사춤을 2~3번 정도밖에 추지 않았고, 나머지는 바다에 누워 여유로움을 만끽하는 여행을 택했다. 살사에 진심인 친구는 나와 따로 시간을 보냈다. 친구는 나와 여행스타일이 잘 맞았다. 각자 독립적인 시간을 존중하며, 무언가 같이 해야한다는 강박이 없는 친구였다. 심지어 푸꾸옥에서 우리는 호텔 방도 따로 잡았다. 덕분에 친구의 눈치를 보지 않고 여행을 즐길 수 있었고, 친구도 내 눈치를 보지 않고 추고 싶던 살사에 집중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