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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삼이와 데븐이 Jan 30. 2023

발길 닿는 대로_베트남 호치민 2

새로운 것들에 몸을 맡기다.

호치민의 부촌이자 호치민의 강남이라고 불리는 2군을 혼자 돌아다녔다. 로컬로 보이는 곳에서 밥도 먹고, 카페도 세 군데나 갔다. 카페 오픈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충동적인 여행에 조금이나마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카페 조사를 컨셉으로 잡고 베트남을 돌아다녔다. 목적에 충실하며 카페를 면밀히 관찰하면서 다녔다.


2군에서 인기가 있는 소위 핫플레이스 카페는 ‘랑랑’이었다. 한국에서 특히 연남동, 홍대 근처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카페의 모습이었다. 기존의 것들에 권태로움을 느껴 새로운 것을 갈망하는 것은 전세계 공통점인 듯하다. 베트남 로컬이 이국적인 내게는 이국적인 느낌을 주지만 그들에게는 권태로움이었고, 깔끔한 인테리어의 ‘랑랑’과 같은 곳은 내게는 권태로움이지만 베트남 로컬 주민들에게는 더 나은 문화라고 여겨지는 듯 했다.

베트남 물가치고 꽤 비싼 축에 속하는 카페였지만 랑랑을 방문한 이들에게 가격은 중요치 않아보였다. 음료가 나오면 음료 사진을 찍고, 곳곳에서 갖가지 포즈를 취하며 본인들 사진을 찍는다. 홍대스타일로 빼입은 베트남 젊은이들을 보며 묘한 감정이 들었다.


베트남 호치민 현지에 살고 있는 친구가 퇴근하고는 같이 1군 쪽으로 가 쇼핑을 하고 밥을 먹고 술을 마셨다. 정말이지 충동적으로 가발샵에 들러 할로윈을 위한 코스프레용 가발을 구매했다. 이 과정에서 2시간 가까이를 소비했다. 긴머리, 짧은 머리, 파격적인 색상의 머리 등 여러 가발을 써본 결과 나는 내가 단발이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주변에서 단발이 잘 어울린다고 했을 때, 나는 과거 긴머리의 내가 그리워 하루빨리 머리를 기르고자 하였다. 심지어 거금 50만원을 들여 머리를 붙인 적도 있다. 그런데 다시보니 내 얼굴형과 이목구비에는 단발도 괜찮은 선택이었음이 보였다.

마음에 드는 가발을 충동적으로 구매하고 가볍게 만둣국에 면을 추가한 것처럼 생긴 길거리 음식을 먹었다. 베트남엔 쌀국수 외에 면요리가 다양하다. 정확히 어떤 면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두가지 종류의 면을 랜덤으로 선택했고, 꽤 맛있었다. 현지인들의 식사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길거리 노점상이었다. 영어가 쓰여있지 않았기에 아마 혼자 왔다면 엄두를 내지 못했겠지만, 베트남어에 능통한 친구 덕분에 로컬 분위기를 제대로 즐길 수 있었다. 해외 여행을 가면 꼭 로컬식당 위주로 다닌다. 고급 레스토랑은 어딜가나 비슷하게 친절한 서비스와 맛을 보장받지만 그건 내가 여행을 다니는 이유가 아니다. 나는 로컬식당만이 가지는 예상치 못한 분위기를 좋아한다. 그것은 무심함일 수도, 불친절일 수도, 따뜻함일 수도 있다. 운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장되지 않은 맛과 분위기를 경험하는 것이 내 여행 방식이다.

*참 베트남 노점상에서는 물티슈를 사용하면 돈을 받는다


친구는 최근 살사댄스에 푹 빠져있었다. 내게 살사댄스를 같이 배우러 가자며 권유했을 때 나는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살면서 살사댄스는 접해본적이 없었지만 초등학교때부터 댄스스포츠를 추고 예술고등학교에 댄스스포츠 전공으로 입학했기에 잘 따라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있었다. 그동안 친구가 춘 살사댄스를 인스타에서 보았기에 실제로 배워보고 싶은 욕구도 어느정도 있었다. 댄스스포츠 가닥이 있어서 그런지 배우기 어렵지는 않았다. 오히려 댄스스포츠에 비해 자유롭게 느껴져서 훨씬 재밌게 배웠다. 선생님의 살사에 대한 진정성과 열정도 좋게 다가왔다. 춤을 추며 땀으로 온 몸이 흠뻑 젖은 것이 몇 년 전이었을까, 기억도 나지 않는데, 오랜만에 운동 후 분출되는 아드레날린과 끓어오르는 에너지를 느꼈다. 이 느낌이었다. 춤을 추고 난 후의 희열,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헬스로는 충족되지 않는 재미와 동작을 더 잘하고싶다는 욕심, 열심히 배웠다는 만족감. 이 맛에 춤을 췄었지 참. 내 몸이 무용과였음을 기억하고 좋아하는 것이 느껴졌다.


클래스가 끝나고는 호치민 밤의 유흥을 즐길 수 있는 ‘밤밤’이라는 라운지펍을 갔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클럽같은 분위기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춤을 추고, 술을 마신다. 베트남에서는 부비부비 문화가 없는지 (혹은 내게 땀냄새가 났나) 깔끔한 기분으로 베트남의 여대생들과 핫하게 즐기고 펍을 나왔다. 우리가 만난 베트남 여대생들은 핫했고 쿨했다. 클럽을 나와서는 친구와 다시 술을 먹을까 했는데, 몸이 너무 지쳐 포기했다. 호치민도 유흥이 이렇게나 발달한 도시구나 싶었다. 서울에서만 24시간 술먹는 게 가능한 줄 알았는데, 호치민에서도 그것이 가능했다. 

실컷 느끼고 보고 경험했던 날이기에 친구 집에 들어오자마자 우리 둘은 쓰러지듯 잠을 청했다. 나는 무슨 정신이었는지 렌즈도 빼지 않고 자버렸다.


새로운 장소,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음식, 새롭게 쓰는 시간 모든 것이 새로웠던 하루였다. 새로운 것에 몸을 맡기고 휩쓸려 다니니 과거의 내가 떠오르기도 했고, 잊고 지냈던 감각이 상기되기도 했고, 낯선 곳에서의 내가 낯설게 다가오기도 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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