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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삼이와 데븐이 Jan 30. 2023

밤 비행기_베트남 호치민 1

여행길에 오르다

밤 비행기에 올라탔다. 낮에 출발하는 여행 풍경에 설렘이 가득하다면, 약간의 피곤함과 함께 출발하는 밤 여행길은 느낌이 사뭇 다르다. 어둑한 밤의 정취는 들뜬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준다. 마치 검은색에 형형색색 그림을 그려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듯이, 어둠이 주는 압도적인 분위기에 어린아이 같은 설렘은 잠시 입을 다문다. 낮의 풍경은 들뜬 설렘을 닮은 밝고 선명한 마음의 색을 입는다. 밤의 고요함은 내 안의 설렘에 차분히 귀 기울이게 한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새로운 생각을 하기 위함이다. 생각하는 것은 귀찮은 일이다. 육체적인 노동보다 형태 없는 생각의 노동이 나를 더욱 지치게 한다. 잠을 청하기 전 침대에 누워 현재 고민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 골똘히 생각했다. 내 안에 떠다니는 수많은 생각의 섬들 중 머물고 싶은 섬이 도저히 없었다. 이 섬 저 섬 옮겨 다니며 생각의 에너지만 축내고 있었다. 내 안의 섬들이지만 모든 섬에서 붕 뜬 기분을 참을 수 없었다. 각 섬에 머무르고 있는 나는 그저 만들어진 캐릭터에 불과했다. 허공에 떠다니는 본연의 자아가 뿌리내릴 곳이 없었다. 내가 뿌리내리고 싶은 새로운 섬을 발견할 수 있을까, 혹은 열악한 다른 섬들을 보면 내 안의 섬들에 정착할 수 있을까 싶어 여행을 떠난다.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기 위한 여행이 될 수도, 기존의 나에 확신을 주는 여행이 될 수도 있다. 


이번 여행은 생각의 흐름대로 다닐 것이다. 여행 계획을 세우지 않은 이유는 한국에서 나를 충분히 괴롭혔던 '해야 한다'의 늪에 나를 가둬놓지 않기 위함이다. (계획은 때때로 나를 '해야 한다' 상태로 만든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했는데 그것들을 하다 보니 어느덧 '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졌다. 원체 욕심이 많은 캐릭터라 이것저것 일을 벌였고, 다 잘하고 싶은 생각에 마음에도 생각에도 과부하가 걸렸다. 남들 눈에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다. 다만 일시적인 하기 싫은 일들에 속아 또다시 인생 리셋 버튼을 누를까 두렵다.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포기해버리고 다른 것을 시작했던 나의 과거 습관을 버리고 싶다. 생각을 비우자. 얕고 많은 생각은 오히려 독이다. 


낯선 환경, 낯선 사람들 틈에서 나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까. 나를 괴롭혔던 지독한 생각들로부터 잠시나마 해방하고 싶다. 대단한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는 나의 강박으로부터 독립하고 싶다. '욕심'에서 해방되어 새로운 것을 여유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맑은 생각의 공간을 가지고 올 수 있을까. 


약 일주일간의 여행에서 나는 무엇을 얻는 것이 아닌 버리고 오는 것을 목적으로 삼으려 한다. 그 과정에서 머릿속 생각의 섬에서 자라나고 있는 독초들이 뿌리 뽑아질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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