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드는 건 익숙하니까

by 김상욱

톡비서가 잠깐 멈췄다.


고객을 찾으려고

방문도 해보고

DM도 보내고

카톡도 보냈다.


내 목소리는 고객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그 사이

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학급 경제 관리 프로그램

다시 해보자."


작년에 세 달 만들고

그 뒤로는 간간이 유지보수만 하던 프로젝트.


다시 불이 붙었다.


형은 이번엔 직접 사람을 모으고 있다.

이전보다 적극적이다.


나도 그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다.

코드를 다시 열고

기능을 하나 붙이고

또 하나 붙이고.


만드는 건 익숙하니까.

만드는 건 재밌으니까.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이거 전에도 이랬는데.


기능을 다 넣고

완성도를 높이고

출시할 만한 수준이 되면

그때 사람들한테 보여주자.


그 "그때"는 오지 않았다.


빌더트랩이라는 말이 있다.


만드는 사람이 빠지는 함정.

고객이 원하는 걸 만드는 게 아니라

내가 만들 수 있는 걸 만드는 것.


개발 그 이상의 것을 하기 위해

기획도 해보고

디자인도 해보고

영업까지 시도해봤다.


스타트업 책도 읽고

관련 자료도 찾아봤다.


그래도 아직

만드는 것 너머의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


시대가 변했다.


2년 전에 1년 걸려 만들던 걸

이제는 일주일이면 만들 수 있다.


만드는 것의 가치는 줄었고

만든 것을 전하는 일의 가치는 커졌다.


그런데 결국 또 이렇게 만들고만 있다.


형의 목소리를 듣고

고객의 목소리는 상상하면서.


이번에는 다를까.


두렵다.


이 끝이 또 빌더트랩으로 끝나는 건 아닐까.


그래도 다시 만든다.


이번에는 조금이라도 다를 거라고

믿기로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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