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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화경 Oct 31. 2020

아이가 20살이 되면 22살 때 엄마를 만날 수 있다.

아이가 20살이 되면 22살 때 엄마를 만날 수 있다.


결혼 전, 22살 때 필리핀에 어학연수를 갔었다. 그 당시 혼자 생각할 시간이 많아 이것저것 생각을 하다 미래의 나에게, 미래의 남편에게 그리고 미래의 아이에게 편지를 썼었다.  나에게 쓴 편지는 미래에 내가 가장 힘든 순간 읽어보려고 썼고, 남편에게 쓴 편지는 결혼을 하게 되면 결혼 당일 주려했다. 그리고 아이에게는 아이가 20살이 되는 해 생일 선물로 주려 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그 당시 누가 나의 남편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미래의 아이에게 편지를 왜 썼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여러 가지 환경적인 변화로 생각이 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젊었을 때 나의 생각을 아이에게 그대로 전하고 싶었다.


아이는 20살이 되면 22살 때 엄마를 만날 수 있게 된다. 예전부터 너의 20살 생일 선물은 엄마가 22살에 적은 편지라고 이야기를 해서 아이도 알고 있다. 언젠가 "그냥 지금 그 편지 주면 안 돼?"라고 했지만 "지금은 네가 이해할 수 없어."라고 대답했다. 내년이면 아들이 15살이기에 이제 5년 남았다.  


나는 그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순간 궁금해졌다. 내가 젊었을 어떤 생각을 아이에게 전하고 싶었을까? 결국 나는 편지봉투를 살짝 뜯어 읽어보았다. 다행히도 그때와 지금의 생각은 변함이 없어 안도했다. 그대로 전해주어도 되겠다.



22살 미래의 아이에게 쓴 편지.


내 미래의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들


처음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말문이 트이질 않는다.

아마도 넌 세상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의 아이겠지? 아직 결혼도 안 한 내가 이런 편지를 쓰는 것 자체가 좀 우습기도 하지만.. 이걸 보는 너란 아이가 아들일지. 딸일지. 지금 난 22살이란다. 그리고 여긴 한국이 아닌 필리핀이라는 곳이고.


내가 여기 온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단다.

첫 번째 이유는 영어를 더 잘하기 위함이고 두 번째 이유는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더 깊이 사고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함이란다.


아직 난 네가 어떤 아이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 하나는 내가 널 정말 사랑한다는 거겠지? 그래서 난 너에게 하고 싶은 몇 가지의 말이 있어서 이렇게 편지를 쓴단다. 과연 내가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든다면 지금 이 생각을 그대로 간직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 아마도 생각이 바뀔 수도 있고 해서 지금 너에게 편지를 쓴단다.


내가 너에게 과연 존경받을 수 있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너에게만큼은 존중받고 싶구나. 내 나이 22살. 정말 꿈 많은 나이이기도 하고 가장 좋을 때지. 너도 아마 너만의 삶의 목표가 정해져 있을 거야. 만약 삶의 목표가 아직 없다면 한 가지를 정하도록 해. 지금 나의 삶의 목표는 '후회하지 말자'라는 거란다. 내가 생각하기 론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일은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후회할 일을 하는 거거든. 대부분 사람들이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계속 그 일을 진행시키지. 예를 들면 지금 내가 여기서 지쳐버려 노는 것에 정신을 판다면 후회할 것은 안 봐도 뻔하거든. 하지만 그것을 참지 못하고 쾌락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거든. 난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내 삶을 후회해 본적이 아직은 한 번도 없단다. 후회할 만한 일들이 있긴 하지만 매 순간 난 최선을 다 했기에 후회하지 않는단다. 너 또한 과거에 집착하며 '그때 더 잘할걸'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안되길 바라. 그것보단 현실에 충실히 해서 시간이 흐른 뒤 그때 정말 잘했었다는 생각이 들도록 생활하길 바라.


그리고 난 너라는 아이가 외적인 것보다는 내적인 것을 더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 됐음 한단다. 자기 자신에게도 또 사람을 사귈 때에도. 외적인 것을 좋아해서 어떤 이를 친구로 만난다면 그 사람이 사고를 당해 외적인 것을 손상했을 때 그때도 넌 여전히 그 사람 곁에 있을 수 있겠니? 외적인 것은 언제라도 변하지만 내적인 것은 잘 변하지 않는단다.


난 네가 내적으로 아름답고 또한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사람이 되었으면 해. 그리고 항상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여유를 가진 사람이 되었으면 해. 사람이 살아가면서 혼자 살 수는 없는 법이란다. 어디를 가든지 너라는 사람이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남도록.


또한 어느 곳에  속하든지 너란 사람이 꼭 필요한 사람이 되길 바라.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라면 세상을 살아가는데 너무 서글프지 않을까? 항상 너를 필요로 하는 곳에 너란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구나.


그리고 살아가면서 돈과 마음의 풍족함 중에서 선택하라면 마음의 풍족을 선택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돈이란 있어도 없어도 문제가 되지만 마음의 풍족함이란 없으면 문제가 되는 것이요. 있으면 삶을 살아가는데 행복을 느낄 수가 있단다. 그래서 난 내가 결혼하게 되는 사람이 마음이 부자인 사람이었으면 한단다. 아마도 너의 아버지가 그런 사람이겠지?


그리고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항상 내적으로 외적으로 자신을 가꾸어 나가고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길. 또한 긍정적으로 모든 것을 생각하고 지혜로운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마음이 따뜻해서 남들에게 사람 냄새가 난다는 말을 들을 수 있기를. 남의 험담을 하지 않으며 (남의 험담은 곧 나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경우가 되므로) 친구의 소중함을 인식하길.


그리고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그 사람을 자신보다도 더 믿을 수 있는지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는 사람인지, 자기 자신을 사랑하며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인지를 생각해보고 배우자를 선택하길..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그냥 한번 쭉 적어봤단다. 아무래도 나이가 들어 너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보다는 너와 비슷한 나이일 때 이렇게 적어두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서 말이지. 나도 아직 이런 사람이 되려면 멀었지만 지금도 노력하고 있단다.


너도 항상 노력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이 편지를 읽고 있을 때쯤 난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지 참 많이 궁금하구나. 다른 건 몰라도 평화로운 가정을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구나.


마지막으로 사랑한다..


2002.11.11

필리핀에서 너의 엄마가 22살 때...




다행히 나의 생각들이 지금 변한 것이 없다. 5년 뒤 이 편지를 받고 아이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매년 아이의 생일이 올 때마다 미래의 그 날을 상상하곤 한다. 아들이 이 편지를 먼저 읽고 2년 뒤, 딸이 20살이 되는 생일에 그대로 이 편지를 다시 전해줄 것이다.


나도 너희와 같은 나이가 있었다고. 그리고 이런 가치관을 가지고 꿈꾸며 살았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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