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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화경 Dec 02. 2019

워킹맘의 슬픔

워킹맘의 슬픔이 최고치가 될 때는...  


워킹맘의 슬픔이 최고치가 될 때는... 바로 아이가 아픔에도 불구하고 일하러 나가야 할 때이다. 지금은 운 좋게 재택근무를 하고 있지만 아이들이 어릴 때는 하루라도 빠지면 안 되는, 대체 인력이 없는 유치원 파견직 영어 교사로 일을 했었다. 거기다 아들이 초등 1학년 때는 유치원에서 영어교사로 일하며 유치원 부속 어학원에서 원장일까지 도맡아 했다. 


아이가 아팠다.


아들이 초등 1학년, 하루는 새벽부터 배가 아파 온 아들이 밤새 토하고 설사하고, 결국엔 고열까지 났다. 큰일 나겠다 싶어 아침이 되자마자 동생을 유치원에 보내고, 아픈 아들을 데리고 병원에 갔다. 결국 아들은 병원 앞에서 눈물을 보이며 그 자리에서 푹 하고 쓰러졌다. 아들을 겨우 일으켜 세우니 갑자기 그 자리에서 아침에 먹은 죽을 다 토해냈다. 이렇게 아픈 적이 없었는데 순간 겁이 났다. 병원에서는 급성 장염이니 학교에 가지 말고 집에서 쉬어야 한다 했다. 병원 치료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아들은 곧바로 침대로 가 힘없이 누웠다.


이런 아픈 아이를 놔두고 직장으로 가야 한다니... 대체 교사가 없기에 내가 빠지면 그 시간을 대체할 수 없었고 어학원도 돌아갈 수 없는 시스템이라 방법이 없었다.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나는 아이에게 사정 이야기를 했다.

엄마가 같이 있어주고 싶지만 엄마가 가지 않으면, 많은 유치원 아이들이 수업을 못하게 되고, 거기다가 어학원도 문을 닫아야 한다고. 아이는 자신은 괜찮으니 나에게 어서 일하러 가보라 했다. 아이가 점심에 먹을 죽과 보리차, 약에 대한 것을 일러두고 혹시나 깜박할까 스케치북에 따로 적어놓았다.



그 당시 어학원까지 수업을 마치면 5시. 집에 도착하면 6시가 되었다. 아픈 아이 혼자 6시까지 있을 것을 생각하니 발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대신 수업을 해줄 사람이 없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일을 나가야 하는 현실이 너무 슬펐다. 혼자 있으면서 또 토하면 어쩌나, 혹여나 열이 심하게 오르면 어쩌나 계속 마음에 걸려 그날 수업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나오기 전, 속이 좋지 않으면 화장실에 가 변기 커버를 올리고 속에 있는 것을 개어내면 된다고 가르쳐 주었지만 아직 1학년 아이인데 혼자서 그러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울컥했다. 


1시쯤 집에 전화를 하니 자고 있었다는 아이. 좀 더 자라고 하고는 2시에 다시 전화를 했다.

"배 안 고파?"라고 물으니

"전자레인지에 죽 데워서 지금 먹고 있어~"라고 답한다.

스케치북에 전자레인지 버튼까지 자세히 그려놓았기에 알아서 잘 데워먹었다며 말이다.

"열 재봤어?"

"응. 38도야."

"그래 약 먹고 쉬고 있어. 또 전화할게."

5시 수업을 마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나는 다시 전화했다. 열은 그다지 내리지 않은 37.8도라고 했다. 


혼자 물티슈로 열을 내렸던 아이


집에 와서 보니 아이는 먹어라고 말한 것들을 다 챙겨 먹고, 약도 야무지게 먹었다. 한데 아이의 침대 옆에 물티슈가 여러 장 뽑혀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웬 물티슈가 이렇게 있어?"

"아~ 열이 많이 나서 열 내리려고 닦았어. 내가 물수건은 못 만들어서."

아이는 열이 날 때마다 엄마가 물수건으로 몸 구석구석을 닦아주었던 기억을 더듬으며, 혼자 열을 내려볼 거라고 물티슈로 온 몸을 닦은 거였다. 순간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저 어린아이가 혼자 몸을 닦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지.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아픈 아이를 놔두고 직장으로 간 건지. 한 편으로는 대견하면서도 또 다른 한 편으로는 너무 미안했다. 


워킹맘들은 그렇게 일 할 때가 많다. 도대체 얼마 번다고. 그거 벌어서 얼마나 사는데 보탬이 된다고, 아픈 아이를 놔두고 가느냐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일하러 가는 엄마들은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는가? 그 누구보다 아이와 같이 있고 싶은 사람이 엄마인데 말이다. 


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가정도 많다.


이번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더 선명하게 이런 일은 수면 위로 드러났다. 초등 고학년 정도면 그나마 괜찮지만 (이것도 그나마 인 것이지 초등 고학년은 혼자 있어도 괜찮다는 말은 아니다.) 초등 저학년까지는 아이들이 학교를 가지 못하자 집에서 돌봐줄 어른이 없어 많은 가정이 혼란스러워했다. 그렇다고 직장을 그만두자니 생계가 막막하고, 계속 다니자니 혼자 있는 아이가 눈에 밟힌다. 일주일, 이주일, 한 달 그 정도면 괜찮겠지라고 했던 것이 벌써 1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전업주부는 돈을 포기하고 아이를 선택한 것이라고. 대신 맞벌이 부부들은 아이가 혼자 있는 것을 감수하면서 여유롭게 사는 것을 선택한 것 아니냐고. 그래서 좀 더 먹고 살기 편한 것 아니냐고. 

물론 그런 가정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좀 더 먹고 살기 편한 가정보다, 일하지 않으면 먹고사는데 지장이 있어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엄마들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하루빨리 워킹맘들이 죄책감 없이 일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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