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엄마는 자연스럽게 되는 것인 줄 알았다. 엄마라는 사람은 아이를 낳는 순간 책 장을 넘기듯 자연스럽게 모성애가 생겨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이라는 사회적인 인식 덕분에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 엄마는 그렇지 않다. 남편보다 아이와 10개월 동안 한 몸으로 생활해서 덜하긴 하겠지만, 엄마 또한 오물오물 거리는 아이의 입을 바라보면 이 아이가 진짜 내 아이인가 싶을 때가 많다. 저 작은 입으로 안간힘을 쓰며 젖을 빨며 조금이라도 더 먹고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는 아이에게 느껴지는 첫 감정은 모성애라기보다는 연민이 더 강한 것 같다. 작디작은 아이가 먹고살겠다고 하는데 조금이라도 먹여야겠다는 마음.
나는 그런 감정이 있고도 시간이 좀 더 지나서야 모성애를 느껴졌던 것 같다. 아니 사실 모성애라는 것이 언제 내 마음에 들어왔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그런 감정을 느낄 만큼 한가하지 않았으니까.
육아책에는 처음 아이의 모유수유 시간을 잘 지켜야 산모가 고생을 안 한다며 시간을 지켜라고 하지만, 그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은 다들 알 것이다. 나 또한 1시간 30분마다 젖을 달라는 아이 때문에 돌아서면 젖을 물리고 돌아서면 또 물렸던 기억이 있다. 안아주고, 트럼을 시키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그러다가 배가 고파 미역국을 한 숟가락 뜨고 있으면 그새 칭얼대며 안아달라는 아이. 다시 안아주고, 젖 물리고, 트럼 시키고, 기저귀 갈아주고, 목욕시키고. '저녁에 두 시간만이라도 제대로 잠을 잘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수 백번, 수 천 번 했던 날들이 있었다.
아이가 걸으면 좀 나아지겠지 생각했던 것들이 나만의 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며, 언젠가는 다시 나의 인생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러며 둘째가 태어나고 영영 그 꿈이 사라져 가는 것을 느꼈다.
아이와 나는 새로운 인생의 문으로 함께 들어온 것이다.
이제는 안다. 다시 나의 인생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리고 아이와 나는 새로운 인생의 문으로 함께 들어온 것이라는 것을. 새로운 인생의 문으로 들어오며 나는 엄마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갖게 되었고, 어른으로는 자랐지만, 엄마라는 사람으로는 다시 자라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우리는 부모가 아이에게 본보기가 되어야 하고 아이가 부모에게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지금까지 아이를 키워봤을 때는 내가 아이에게 배우는 것이 더 많았다. 순수한 감정을 유지하려 하지만 어느새 나도 모르게 사라져 버린 순수함이라는 것을 아이로 인해 다시 발견하게 되었고 덕분에 잃어버렸던 동심의 세계로 다시 들어갈 수 있었다. 아이와 함께 하는 매 순간순간이 나를 깨우쳐 주었고 다시 자라게 했다.
아직도 엄마로 자라고 있는 중입니다.
어느새 아들은 중학생 1학년이 되었고, 딸은 초등학생 5학년이 되었다. 이제는 동심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현실이라는 세상에 놓인 아이들과 소통해야 하는 시기가 된 것이다.
그동안 아이들과 소통을 많이 한다고 생각했지만, 코로나로 작년 12월 겨울방학부터 지금까지 9개월 정도를 아이들과 함께 집에 있으며 자주 티격태격하기도 했다. 그러며 생각했다.
'그래. 나는 아직도 엄마로 자라고 있는 중이야.'
주변 친구들은 아직 아이들이 유치원을 다니거나 초등학교 저학년이라 나에게 이제 수월하겠다며 부럽다고 한다. 물론 체력적으로 보면 예전과 비교해 힘들진 않다. 대신 아이들과 소통하면서 어떻게 살아가는 힘을 키워줄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한다. 이제는 공부만 잘한다고 해결되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