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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화경 Dec 06. 2019

아토피에 틱 현상까지 왔던 아들



아이가 말하지 않는다고
힘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이는 온몸으로
버티고 있는 것 일 수도 있다.


아이가 말하지 않는다고 힘들지 않는 것일까? 아이는 그 작은 몸으로 버티고 있는 것 일 수도 있다.


4살, 아토피가 시작되다.


 갑작스럽게 아들이 4살 되던 해 가을, 아토피가 시작되었다.




그때 당시 나는 너무나도 당황스러웠다. 큰언니의 딸이 아토피가 심해 옆에서 본 적은 있었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내 아이가 아토피를 겪에 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잠깐 조카를 만나서 보아도 얼마나 고틍스러울지 짐작이 안 갈 정도였기에, 한시라도 빨리 잡아야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언니에게 전화를 해 상황을 말해주고,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다. 언니는 엄청나게 긴 내용을 메일로 정리해서 보내줬다.



물 많이 마시기.
이불 매일매일 털고, 일주일에 한 번씩 세탁하기.
세제는 천연세제, 피존은 사용하지 않기.
습도와 온도 조절은 필수.
기름 사용하지 않는 반찬 조리법.
화장품, 목욕과 보습은 이렇게....

 


그렇게 몇 개월을 초기에 잡아야 한다는 심정으로 언니가 보내준 내용대로 지켜나갔다. 나는 하루아침에 그 어린 4살짜리에게 먹거리 변화를 시도했다.

"아들. 네가 몸이 간지럽고 힘들지? 원래 우리가 먹던 음식들을 계속 먹으면 네가 더 간지러워진데. 그래서 이제부터는 먹었던 음식 중에 안 좋은 것은 안 먹을 거야. 대신 건강한 음식을 먹을 거야. 그럼 너도 간지러운 게 많이 좋아질 거야. 알겠지?"

"응. 알았어."

그렇게 아이는 한번의 반항도 없이 하루아침에 바뀐 먹거리를 수용했다. 한 번도 예전 음식이 먹고 싶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물론 과자도 끊었다... 그 당시 먹을 수 있는 과자는 쌀과자 뿐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나는 정말 매정한 엄마였다. 조금씩 끊은 것도 아니고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끊었으니 말이다. 다행히도 아이는 생각보다 빠르게 호전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5살, 틱 현상이 시작되다.


알고보니 아이는 온몸으로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먹고 싶지만 그 어린 아이는 온몸으로 버틴 것이었다. 그렇게 참은 것이 스트레스였던지, 아들이 5살 되던 봄에 눈을 깜박이는 틱 현상이 나타났다. 그것도 모르고 엄마라는 사람은 아이가 참을 만한 줄 알았다니. 어리석은 엄마였다. 그렇게 아토피는 점점 나아졌지만, 틱 현상은 갈수록 심해졌다.


하루는 조금이나마 아이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싶어 둘만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3살 배기 동생을 언니에게 맡기고  처음으로 아들과 지하철을 타고는 해운대로 놀기로 했다. 아이는 지하철에서도 어김없이 눈을 깜빡거렸다. 지하철은 양옆으로 사람들이 앉으니 아이가 타면 옆에 앉은 어른들은 꼭 한 마디씩 입을 댄다. 몇 살이냐, 어디가느냐. 거기서 끝이면 괜찮은데 눈을 깜박이는 아이에게 나이 있으신 아줌마, 할머니, 할아버지는 한 마디씩 더 한다.

"눈 아프니?"

"잠 오니?"

"에잇, 나쁜 버릇이야. 그만해."

지하철에서 내린 아이는 왜 어른들이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기에  

"엄마 난 잠도 안 오고 눈도 안 아픈데 왜 자꾸 그렇게 묻는 거야?"

라고 물었다. 틱 현상은 아이가 인식하면 더 고치기 힘들기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글쎄. 네가 피곤해보였나봐."

라고만 대답을 해주었다.


해운대 백사장에 도착한 우리는 바다를 바라보며 백사장에 앉아 모래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그때 낯선 아주머니가 다가오시더니 엄마랑 아들이 보기 좋다며 요구르트와 호두과자를 내미셨다. 아들은 내 눈치를 살폈다. 먹으면 안되는 것이라는 것을 느낌적으로 알았던 것이다. 나는 아주머니에게 마음은 감사하지만 아이가 아토피로 먹을 수 없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한 번쯤은 괜찮다며 간식을 권했다. 그렇게 권하는 아주머니가 미웠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계속 아이 눈 앞에 먹을 것을 보여주는 행동도 싫었다. 아이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자 나왔는데 또 이렇게 아이를 힘들게 하다니.


그래. 정말 딱 한번. 한번만 먹이자. 대신 호두과자는 위험하니 요구르트만. 이라며 아이에게 요구르트를 까서 주었다. 얼마나 기뻐하며 그 작은 병 하나를 마시던지. 요구르트를 마시며 행복해 하는 아이를 보면서 그날 밤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후회하지 말자 다짐했다. 역시나 그날 밤 아이는 온 몸을 긁었고, 연고를 발라주고 나서야 겨우 잠에 들수 있었다.  잠든 아이를 보고 얼마나 울었던지.


아토피만으로도 힘든데 틱까지...아이는 그 날 이후, 스스로 음식 조절을 했고, 그 덕분에 아토피는 점점 사라지고 먹을 수 있는 음식도 늘어났다. 그리고 7살에는 모든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며 아이의 틱 현상도 거의 볼 수 없게 되었다.


어김없이 나타나는 틱 현상


하지만. 초등학교를 들어가고 난 뒤 매번 학기가 바뀔때면 어김없이 틱 현상이 나타났다. 그때도 못 본 척... 그럼 다시 괜찮아졌다. 그런데 4학년이 되며 틱이 심할 대로 심해졌다. 눈 깜박임, 목 젖힘, 어깨 들썩임, 소리. 한꺼번에 여러 증상들이 왔다.  이건 못 본 척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선 것이었다.


틱이 있는 아이의 부모라면 이런 욕구를 이해할 것이다.



목을 젖힐 때 그 목을 부여잡고 싶다는 욕구를..
어깨를 들썩일 땐 그 어깨를 꾹 누르고 싶다는 욕구를..
목에서 소리를 낼 땐 조용히 하라고 말하고 싶은 욕구를..
얼마나 많이 그 욕구들을 억눌러야 하는지를...


우리는 보통 심리 불안에서 틱이 온다고 다들 알고 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여러 자료를 조사해 본 결과 미국 학회에서 그것뿐만이 아니라 뇌손상이 원인인 경우도 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고 했다. 또한 아토피였던 아이들에게는 틱이 올 확률이 높다는 통계도 있었다. 아이가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하지만 약물은 싫었다. 그래서 운동요법으로 치료할 수 있는 곳에서 운동과 식단 조절로 치료를 했다. 또 다시 먹거리를 끊은 것이다.



음성틱이 있을 경우에는 외출하기도 힘들다.. 영화관도 못 간다. 조용한 영화관에서 아이가 계속 소리를 내면? 당연히 주위에서 눈치를 준다. 그걸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 인가? 네가 소리 내서 갈 수 없다고 할 텐가? 어떻게 그렇게 말하겠는가.

그떄 나는 아이 앞으로 나가는 내 손을 얼마나 많이 억눌렀던가... 아니 고백하건대 가끔은 나도 모르게 눈 깜박이지 말라고 말할 때도, 지긋이 어깨를 잡아 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 뿐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뒤로 돌아 가슴을 치며 한없이 울었다.


"알 것 같아요..... 진짜 답답하겠어요."라고 주변에서는 말한다. 하지만 다른 아이가 틱이 있는 것을 볼 때와 내 아이가 틱이 있는 것을 볼 때는 180도 다르다. 이는 아토피도 마찬가지이고 틱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다른 깊은 병들을 이것과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정말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병들 말이다. 그 아픔은 당사자의 가족 말고는 모르는 법이니까.


아이가 틱에 한참 힘들어할 때 나는 유치원 영어강사였고, 부속어학원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틱이 있는 아이 엄마와 상담을 했다. 서로 틱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하며 같이 울다가 마지막에
"어머니.. OO이 한테는 말하지 마시고요. 힘들어도 못 본 척해주세요. 저도 OO이가 눈 깜박여도 못본척 할께요."
라고 말하고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눈을 계속 깜박거리고 있는 아이를 보고 있으니 너무 답답했다. 모른척하라고 다른 엄마에게는 말했으면서 막상 나는 내 아이가 그러고 있는 것을 보기 힘들었던 것이다. 나는 그냥 아이를 안았다. 그냥.. 너무 안쓰러워서? 맞다 안쓰럽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그 눈 깜박임을 볼 용기가 안 나서였다.  그럼 아이는

"엄마 왜?"

하고 물었다.

"아니.. 그냥 안고 싶어서."
라고 말하며 속으로 매 순간 울었다.


항상 많이 안아주고 사랑한다 표현하고, 아이가 뛰어놀고 싶은 만큼 뛰어놀게 해 주었다. 짧게나마 치료도 받고, 주위 사람들과 담임선생님께도 당부를 드렸다. 모른 척해주세요... 그 결과 이제는 거의 증상이 사라져서 학기가 변해도 괜찮아졌다.




가끔 지하철에 아이와 같이 타다 보면 음성틱이 있는 아이를 발견한다. 그럼 아이가 묻는다. 왜 저 아이는 소리를 내는 거냐고. 그럼 나는 아파서 그런 거니까 모른 척해주는 게 저 아이를 돕는 거라고 말한다. 지금은 괜찮지만 너도 저렇게 아플 때가 있었다고 말이다.


아이는 기억을 하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어꺠를 들썩이고 고개를 젖히고 눈을 깜박였다는 것을. 한 참 뒤 아이는 말했다. 친구들이 고개 젖히는 것을 보고는

"너 멋있는 척 하냐?"

라고 했다고. 아이는 그게 아닌데 억울했다고 했다. 그땐 그렇게 하기 싫어도 자신도 모르게 그런 행동들이 나와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이다.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사실 아직도 모른다. 이제 아이는 겨우 중학교 1학년이니까. 또 언제 나타날 지 모른다. 하지만 조금은 알겠다. 괜찮아질거라고 믿고, 그때마다 엄마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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