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로 존재했던 순간, 그 공간으로 3
-나 홀로 여행-
옛날 생각을 하며 타박타박 걷다 보니 어느덧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예전에는 백사장이 입구에서부터 넓게 펼쳐져 있었는데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해변공원이 내 눈앞에 있다. 흐르는 물을 막아 강을 만들고 나무를 심어 그늘을 만들어 놓았다. 언제라도 돗자리를 가지고 와 펼치면 가족들과 피크닉을 즐길 수 있다. 예쁘다. 정말 예쁘게 잘 만들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다. 내가 국민학교 때부터 뛰어놀던 다대포 바닷가는 보이지 않는다.
국민학교 5학년, 학교를 마치면 친구들과 함께 바닷가에 살던 친구 집으로 갔다. 몇 명 들어가지도 못하는 작은 방에 우린 다닥다닥 붙어서는 키득키득 거리며 놀았다. 그러다 친구 아빠가 일찍 일을 마치고 돌아오시면
“다 나가자.”
라고 하셨다. 그럼 우리는 아저씨 최고라고 말하며 뛰어나갔다. 친구 아빠는 작은 배로 낚시를 하며 생계를 이어가시는 분이셨다. 아저씨가 우리를 데리고 나가시는 이유는 배를 태워주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좋다고 배를 탔다. 이른 오후에, 때론 늦은 오후에. 하루는 바다에서 저녁노을을 보기도 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수평선 너머로 태양은 주황빛을 퍼트리고 있었고, 바다는 그런 태양을 빠른 속도로 삼켜버렸다. 태양을 삼킨 바다는 주홍빛으로 번졌다. 아... 평생 잊을 수 없는 명화였다.
바닷가는 나의 스트레스 해소지이기도 했다. 고등학교 시절. 이성친구로 마음 아플 때, 공부로 답답할 때 바닷가에 가서 하고픈 말들을 했다. 어디다 풀지 못하는 내 성격상 바다에게 다 풀었던 것이다.
“OOO, 네가 그렇게 잘났냐? 두고 봐라. 나중에 후회하게 해 줄 거야.”
“내가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데. 시험 네까짓게 뭐라고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 거야.”
그러고 보면 바다는 나에게 있어 둘도 없는 친구임이 분명하다. 나의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었으니 말이다. 아직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걸 보면 바다는 입이 아주 무거운 듯하다. 고맙다. 바다야. 한데 요즘 아이들은 어디 가서 이런 말을 하지? 다대포가 개발되다 보니 소리를 지를 만한 곳이 사라졌다. 바다친구가 사라졌다.
새로 생긴 해변 공원을 지나 백사장으로 향했다. 역시나 예상대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갯벌체험을 하는 것이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아이들과 부모들. 여기저기서 아빠, 엄마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면
“어~ 잠깐만”
이라고 말하고는 아이들에게 간다. 나는 우리 아이들과 갯벌체험을 했었나? 딱 한 번이었다. 순간 미안해졌다. 내가 어릴 적에는 백사장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게를 잡고 놀았는데. 다 잡고 나면 통에 넣어 백사장 바로 앞에 있는 친구의 횟집으로 갔다. 그곳에서 발을 씻고 게도 씻었다. 어떤 날은 잡은 게를 집에 들고 가 엄마에게 혼나기도 했었다.
“넌 왜 잘 있는 애들을 데리고 오니? 놓아주고 와야지”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잡아도 다시 놓아주었다.
백사장을 따라 걷다 보면 백사장 끝에 위치한 몰운대에 도착하게 된다. 예전에는 없던 데크길이 보인다. 길게 쭉 뻗은 데크길은 소위 말하는 인생 샷을 찍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래서인지 많은 연인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데크길 끝에 보이는 낙조대. 낙조대는 몰운대 옆에 있는 작은 섬처럼도 보였다. 크고 작은 바위들과 조약돌이 둘러싸고 있는 곳. 그곳에서 백사장을 바라보니 어디가 해변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경계가 불분명해 보였다.
나는 국민학교 1학년 때 다대포로 이사를 왔다. 그 당시 우리 집이 이사 온 아파트는 유일한 아파트였고, 나머지 집들은 주택이었다. 그래서인지 아파트 공사를 하는 곳에 가면 놀거리가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지만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집채만 한 바위 사이로 뛰어다니며 친구들과 잡기 놀이를 했었다. 그렇게 결혼 전까지 18년을 다대포에서 살았다. 내가 나로 존재했던 모든 시간이 머무른 공간. 어릴 때는 촌 동네에 산다고 불만이 많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좋은 곳에 살았구나 싶다. 다대포가 아니었다면 나에게 이런 소중한 추억이 있었을까?
바다를 바라보며 고향냄새를 맡아본다. 고향냄새는 향수처럼 인위적이지 않다. 사람마다 맡는 고향냄새는 각각 다를 것이다. 자신만의 추억이 만들어낸 향기이기에 말이다. 바다에 와보니 알 것 같다. 내가 사춘기를 겪지 않고 잘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바다 덕분이었다는 것을. 답답함이 느껴지면 언제든 바다에게 달려가 털어놓았으니까.
사십춘기에 다다른 나는 다시 바다를 본다.
‘내가 정말 답답하면 또 널 찾을 거야. 하지만 최대한 널 찾아오지 않게 빌어줘. 그게 내가 잘 이겨내고 있다는 거니까.’
파도가 대답해준다. 쏴아아~ 쏴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