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나의 심장과 떠난 여행
-아이들과의 여행-
사십춘기가 오고 네 번의 여행을 했다. 첫 번째는 내가 가장 가고 싶었던 강원도 양 떼 목장에서의 별같이 아름다운 여행이었고, 두 번째는 첫 번째 여행의 연장선이었다. 양 떼 목장에 다녀와 적은 여행 에세이 공모전에서 상으로 받은 다낭 항공권으로 엄마와 단 둘이 다녀온 여행이었다. 세 번째 여행은 홀로 고향에 다녀와 가장 나다웠던 시간을 되돌아보는 것이었다.
마지막인 네 번째 여행은 아들, 딸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여름방학에 떠난 8박 9일 일정의 뚜벅이 전라도 여행이었다. 전라도로 떠난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다들 말렸다. 아직 초등학생인 아이 둘을 데리고 그 더운 여름날, 차도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어떻게 전라도를 여행하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래서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고, 아이들도 문제없다며 스스로 여행지와 숙소, 맛집까지 미리 인터넷으로 찾았다. 그래야 엄마가 주도하에 끌고 다니는 여행이 아닌, 함께 하는 여행으로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였다.
군산, 전주, 순천, 여수 순으로 기차와 시외버스, 일반 버스를 이용해 우리는 여행지를 옮겨 다녔다. 아이들은 많이 걸어도 괜찮아했고, 땀에 절어도 짜증 내지 않았다.
다행히 우리가 묵은 숙소의 주인 분들도 다 좋았다. 순천의 숙소에서는 작은 온돌방으로 예약한 우리에게 가장 큰 방이 하나 남아 있다며 아이들도 있는데 침대에서 자라고 그 방을 내어주셨다. 아이들은 감사하다고 연신 고개를 90도로 숙이며 인사했다. 식당도 마찬가지였다. 사장님께서 아이들이 싹싹하다며 가는 곳마다 인심을 팍팍 써주셨다. 그런 행운의 연속에 딸이 말했다.
"엄마, 우린 진짜 운이 좋은 것 같아요. 만나는 사람마다 어쩜 이렇게 좋은 사람만 만나는 걸까요? 세상에는 아직도 좋은 사람들이 정말 많은 것 같아요."
"맞아. 세상에는 원래 좋은 사람들도 많지만, 너희가 먼저 인사를 잘하고 붙임성 있게 하니 더 잘해주시는 것도 있어. 웃으며 말하는데 어떻게 안 좋게 대할 수 있겠어."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도 곱다는 말이랑 같은 거네요."
이 대화로 이번 여행에서 내가 전해주고 싶은 것들은 벌써 다 전한 듯했다.
나는 매번 숙소에서 잠을 잔 뒤 새벽에는 아이들이 자는 시간을 틈타 그 지역을 혼자 돌아다녔다. 새벽시간이라 길에는 아무도 돌아다니지 않았고, 관광지라 위험하지도 않았기에 혼자 분위기에 취하기는 딱이었다. 고요한 것도 좋았지만 나에게 더 좋은 것은 따로 있었다. 낮에는 사람들로 인해 담고 싶은 풍경을 담지 못했다면, 새벽에는 내가 원하는 것들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순천이었다. 순천만 습지는 나에게 잊지 못할 감동을 선물해 주었다. 순천만의 안개. 손을 뻗으면 왠지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안개이지만 잡을 수 없었다. 언젠가 느꼈던 꿈같았던 시간과도 같은 느낌이랄까. 내가 가 본 우리나라 중 나의 마음을 가장 흔든 곳이었다. 새벽에 나와보지 않았다면 느낄 수 없었던 것들이었기에 더 의미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누군가가 스포이드로 물방울을 톡톡 떨어뜨린 것처럼 눈물이 또르르르 뺨을 타고 흘렀다.
나는 사진에서만 보던 순천만의 S자 수로가 보고 싶어 졌다. 무리해서 용산전망대까지 올랐고, 그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나. 우주에서 바라보면 개미보다도 작아 보일, 점으로라도 느껴질까 하는 한 사람에 불과한데, 작은 것 하나에도 상처 받고 힘들어하고 아파하다니. 불현듯 내가 힘들어하던 것들이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사는 인생에서 힘들었던 일들이 얼마나 크게 작용할까 싶기도 했다. 한낫 과거에 불과한 일들 인 것을.
나에게 네 번째 여행의 새벽시간은 홀로 떠난 여행이었고, 나머지 시간은 아이들과 함께 한 여행이었다. 아이들은 이때까지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우리는 여행하는 동안 하늘을 보며 구름을 이야기했고, 내리쬐는 태양으로 여름을 느꼈고, 나무 밑 벤치에서 바람이 가져오는 상큼함을 나누었다. 여수의 밤바다 위에서 낭만을 이야기했고, 순천 낙안읍성마을에서는 밤마실을 나갔다. 나의 양 손에는 아들 손, 딸 손이 꼭 쥐어져 있었고 우리는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귀신 이야기에 으슬으슬함을 느꼈다.
살면서 이렇게 여행을 많이 해본 적이 없었다. 나에게는 몇 년에 한 번 갈까 말까 하는 것이 여행이었는데 일 년동안 네 번의 여행을 다녀오다니. 그때마다 글을 적고, 그 순간 느낀 것을 남겼다. 모든 것들이 나를 치유할 수 있게 해 주었고,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만들었다.
여행은 나에게 영혼의 안식처가 되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