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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화경 Nov 26. 2019

22살, 미래의 아이에게 쓴 편지

저는 26살 결혼을 해, 27살에 아이를 낳았습니다. 모든 것이 서툴렀지요. 아장아장 걷는 모습이 정신없이 지나가더니, 아이는 어느새 유치원을 다니고 있었습니다. 조잘조잘 말도 잘하고, 행동반경도 넓어지고, 금세 자신의 몸보다 더 큰 책가방을 메고 학교를 다녔습니다.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첫째인 아들은 내년이면 중학교를 갑니다.




저에게는 아이들이 20살이 되면 줄 특별한 생일선물이 있습니다. 아주 특별한 선물이지요. 바로 제가 22살 때 아이에게 적은 편지입니다. 결혼도 안 한 나이에 무슨 말이가 싶지요?


22살 필리핀에 어학연수를 간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부모님과 떨어져 지낸 것이죠. 어떤 마음에서 엄마가 나를 키웠을까 하는 생각이 들며, 먼 훗날 나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면 과연 엄마처럼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싶었답니다. 솔직히 사람 마음은 시시각각 변하는 거니까요. 그래서 미래의 아이에게 편지를 적기 위해 펜을 들었습니다. 20대 초반 저의 마음 그대로를 전하기 위해서. 아이가 20살이 될 때 주려고 말이죠.


그때가 되면 저의 마음이 과거의 마음보다 더 깨끗하리라는 보장은 없으니까요. 삶에 찌들어 아이에게 진정 중요한 것을 전해주지 못하는 건 아닌가 하는 염려도 있었지요.




작년, 이 편지를 뜯어보았습니다. 과연 나는 변하지 않고 나의 가치관대로 아이를 잘 키우고 있는가. 하고 말이죠. 그리고 가끔 다시 봅니다.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 아직은 그때 생각 그대로 인 듯 해 다행입니다.


6년 뒤, 아들에게 그리고 8년 뒤 딸에게 이 편지를 주려 합니다.




내 미래의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들


처음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말문이 트이질 않는다. 아마도 넌 세상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의 아이겠지? 아직 결혼도 안 한 내가 이런 편지를 쓰는 것 자체가 좀 우습기도 하지만.. 이걸 보는 너란 아이가 아들일지. 딸일지. 지금 난 22살이란다. 그리고 여긴 한국이 아닌 필리핀이라는 곳이고.


내가 여기 온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단다.


첫 번째 이유는 영어를 더 잘하기 위함이고 두 번째 이유는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더 깊이 사고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함이란다. 아직 난 네가 어떤 아이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 하나는 내가 널 정말 사랑한다는 거겠지? 그래서 난 너에게 하고 싶은 몇 가지의 말이 있어서 이렇게 편지를 쓴단다. 과연 내가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든다면 지금 이 생각을 그대로 간직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 아마도 생각이 바뀔 수도 있고 해서 지금 너에게 편지를 쓴단다.


내가 너에게 과연 존경받을 수 있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너에게만큼은 존중받고 싶구나. 내 나이 22살. 정말 꿈 많은 나이이기도 하고 가장 좋을 때지. 너도 아마 너만의 삶의 목표가 정해져 있을 거야. 만약 삶의 목표가 아직 없다면 한 가지를 정하도록 해. 지금 나의 삶의 목표는 '후회하지 말자'라는 거란다. 내가 생각하기 론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일은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후회할 일을 하는 거거든. 대부분 사람들이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계속 그 일을 진행시키지. 예를 들면 지금 내가 여기서 지쳐버려 노는 것에 정신을 판다면 후회할 것은 안 봐도 뻔하거든. 하지만 그것을 참지 못하고 쾌락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거든. 난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내 삶을 후회해 본적이 아직은 한 번도 없단다. 후회할 만한 일들이 있긴 하지만 매 순간 난 최선을 다 했기에 후회하지 않는단다. 너 또한 과거에 집착하며 '그때 더 잘할걸'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안되길 바래. 그것보단 현실에 충실히 해서 시간이 흐른 뒤 그때 정말 잘했었다는 생각이 들도록 생활하길 바라.


그리고 난 너라는 아이가 외적인 것보다는 내적인 것을 더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 됐음 한단다. 자기 자신에게도 또 사람을 사귈 때에도. 외적인 것을 좋아해서 어떤 이를 친구로 만난다면 그 사람이 사고를 당해 외적인 것을 손상했을 때 그때도 넌 여전히 그 사람 곁에 있을 수 있겠니? 외적인 것은 언제라도 변하지만 내적인 것은 잘 변하지 않는단다.


난 네가 내적으로 아름답고 또한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사람이 되었으면 해. 그리고 항상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여유를 가진 사람이 되었으면 해. 사람이 살아가면서 혼자 살 수는 없는 법이란다. 어디를 가든지 너라는 사람이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남도록.


또한 어느 곳에 속하든지 너란 사람이 꼭 필요한 사람이 되길 바래.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라면 세상을 살아가는데 너무 서글프지 않을까? 항상 너를 필요로 하는 곳에 너란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구나.


그리고 살아가면서 돈과 마음의 풍족함 중에서 선택하라면 마음의 풍족을 선택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돈이란 있어도 없어도 문제가 되지만 마음의 풍족함이란 없으면 문제가 되는 것이요. 있으면 삶을 살아가는데 행복을 느낄 수가 있단다. 그래서 난 내가 결혼하게 되는 사람이 마음이 부자인 사람이었으면 한단다. 아마도 너의 아버지가 그런 사람이겠지?


그리고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항상 내적으로 외적으로 자신을 가꾸어 나가고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길. 또한 긍정적으로 모든 것을 생각하고 지혜로운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마음이 따뜻해서 남들에게 사람 냄새가 난다는 말을 들을 수 있기를. 남의 험담을 하지 않으며 (남의 험담은 곧 나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경우가 되므로) 친구의 소중함을 인식하길. 그리고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그 사람을 자신보다도 더 믿을 수 있는지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는 사람인지. 자기 자신을 사랑하며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인지를 생각해보고 배우자를 선택하길..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그냥 한번 쭉 적어봤단다. 아무래도 나이가 들어 너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보다는 너와 비슷한 나이일 때 이렇게 적어두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서 말이지. 나도 아직 이런 사람이 되려면 멀었지만 지금도 노력하고 있단다.


너도 항상 노력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이 편지를 읽고 있을 때쯤 난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지 참 많이 궁금하구나. 다른 건 몰라도 평화로운 가정을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구나.

마지막으로 사랑한다..


2002.11.11

필리핀에서 너의 엄마가 22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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