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화경 Dec 03. 2019

유치원부터 시작되는 왕따

왕따는 언제부터 시작될까?


이런 질문을 하면 대부분 초등 고학년부터 시작되거나 아니면 좀 빠르다면 저학년 아니야?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더 가혹하다. 믿기 힘들겠지만 유치원 때부터 왕따를 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에이~~ 설마 거짓말.. 애들이 뭘 안다고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의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도를 넘고 있다. 성남 어린이집 성폭행 사건만 보더라도 말이다.


이 일은 유치원에서 영어 파견교사로 있을 때 일이다. 그 아이들이 유치원을 졸업한 지 2년이 되었고, 이 일이 일어난 지는 벌써 5년 전이 되었다. 5살 영어 특강시간. 미리 교실에 들어가 수업 준비를 하고 있는데, 5살 아이 두 명이 한 명을 왕따 시키는 것을 내 눈 앞에서 본 것이다. 눈 앞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서도 나는 내 눈과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5살의 대화라고는 믿기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세 명의 여자 아이가 쪼롬히 나의 바로 앞에 앉아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니 두 명만 이야기를 한 거라고 해야겠다. 먼저 예쁘장하게 생긴 아이가 한마디를 시작했다. (이름은 당연히 가명이다)

주연 : "채희야~~ 우리 유치원 재미없지 않니?"

채희 : "응. 맞아. 별로 재미없어."

주연 : "우리 엄마가 유치원을 잘 알아보지도 않고 골랐나 봐."

채희 : "우리 엄마도."

주연 : "그런데 미혜랑 같이 유치원에 다니는 것도 싫어."

채희 : "나도. 미혜랑 다니는 거 싫어."

주연 : "우리 다른 유치원으로 갈까?"

채희 : "그럴까?"

주연 : "아니다. 미혜가 다른 유치원에 가면 되잖아."

채희 : "아~그럼 되겠네. 우리 미혜한테 다른 유치원에 가라고 할까?"

미혜는 주연이 바로 옆에 앉아 있었다. 다 들어라고 큰소리로 이야기를 한 것이다. 미혜는 눈물만 뚝뚝 흘리며 앉아 있었다.

 


사실상 이 아이들은 유치원을 너무나 재미있어라 하는 아이들이었는데 대화 내용 자체가 좀 이상하다 생각했었다.


나는 너무 어이없어 정말 10초 정도 '그대로 멈춰라'가 되었다. 수업 세팅을 하다 말고 내가 보고 있는 상황이 꿈은 아닌가, 내가 헛것을 듣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말이다. 그러나 꿈이 아니었다. 내 앞에서 5살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가 맞았다.


일반적으로 파견교사는 수업만 하고 나가야 하는 것이 기본적인 것이라 이런 일은 담임선생님께 말을 전해야 하고 간섭을 하면 안 된다. 하지만 나에게는 더 이상 수업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미혜의 부모님이 이 사실을 안다면 얼마나 속상할 것이고, 미혜 본인도 얼마나 마음이 안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또한 채희나 주연이의 부모님도 우리 아이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채희와 주연이에게 말을 걸었다.

"채희야, 주연아. 이때까지 선생님한테 이상한 소리가 들렸어. 옆에 미혜가 앉아 있는데 너희가 미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들렸거든. 선생님에게 들렸으면 옆에 있는 미혜한테도 들렸겠지?"

이렇게 말하는 순간 담임선생님이 들어오셨다. 담임선생님이 있는데 파견교사가 뭐라고 하면 일이 더 커질 듯하여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담임선생님께 이야기를 했다. 두 명의 친구가 나머지 한 명에게 다른 유치원으로 가라고 한다고. 이건 좀 아닌 것 같다고.


담임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셔서 마무리를 지으셨다. 그러나 돌아온 미혜는 계속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완벽한 왕따는 아니지만 5살 아이들에게서 나오는 행동이라고는 생각하기가 힘든 것들이었다. 이제 괜찮다고 알아듣게 말했다고 하시는 선생님의 말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수업을 마치고 미혜를 안아주고 토닥토닥해주는 것 밖에 없었다.

위의 대화 내용을 보면 아이가 하는 대화라고는 상상을 할 수가 없다.

"우리 엄마가 유치원을 잘 알아보지도 않고 골랐나 봐"

라는 말을 5살이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엄마의 입에서 나오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말이다.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아이들이 듣는 앞에서 말을 하곤 한다. 아마 저 말도 엄마가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유치원을 좀 잘 알아보고 고를 걸 잘못했네.."

라고 말이다. 

엄마가 아이 앞에서 말했거나 아니면 아이가 엄마들이 대화할 때 들었거나 말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7살도 아니고.. 5살이 이런 말을 어떻게 하겠는가?


개인적으로 그 유치원은 정말 좋은 유치원이었다. 파견교사가 인정하면 말 다한 거다. 아이들도 너무나 좋아하는 곳이었는데 왜 그런 말을 그 아이가 했는지는 아직도 모를 일이다.


점점 왕따의 문제는 심각해지고 있다. 이제는 유치원 때부터 걱정을 해야 하는 일이 되어 버렸다. 내 아이가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조차도 알 수가 없다. 말을 하지 않는 이상 말이다.


부모들은 더 바빠지고 아이들의 인성은 더 나빠지고....


인성을 위해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무엇일까? 

"제가 너무 바빠서요. 따로 가르칠 시간이 별로 없어요."

굳이 가르치치 않아도 된다. 부모가 먼저 모범을 보이기만 한다면 된다. 아이에게는 하지 말라고 하면서 부모는 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아이에게는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버리라고 하면서 길을 걷다 필요 없는 껌 껍질이나 휴지를 은근슬쩍 바닥에 버리기도 하고, 아이에게는 신호를 잘 지켜야 한다 하면서 아이가 없을 때는 바쁘니까 신호를 위반하고 길을 건너기도 한다. 그러면서 아이에게는 지켜라고 하는 것이다. 친구끼리는 싸우지 말라고, 뒤에서 욕하는 것은 나쁜 것이라고 하면서 엄마들끼리 만나서는 다른 엄마를 욕한다. 그것도 아이들이 놀고 있는 자리에서 말이다. 생각보다 아이들은 귀가 밝다. 열심히 노는 것 같아도 다른 한쪽의 귀는 열려있다. 다 듣고 있다는 말이다. 


아이는 부모의 말 한마디까지 보고 배운다.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를 아이는 그대로 복사한다. 아이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이들은 윗사람의 말을
귀담아들은 적은 전혀 없지만
그들을 모방하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다.
- J. 볼드윈


매거진의 이전글 사춘기! 재밌는 게 없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