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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화경 Feb 27. 2020

봄을 빼앗겨 버렸다.

봄을 빼앗겨 버렸다. 지금쯤이라면 가벼워진 외투에 미소를 지으며 거리를 활보하다 나뭇가지에 조금씩 보이는 봄을 보며 "안녕, 봄아!"라고 인사할 시기인데... 하루에도 몇 번씩 여러 대의 핸드폰으로 동시에 울리는 삐비 빅 거리는 소리.  아이들과 함께 문자를 확인하고 코로나 확진자들의 동선을 확인한다. 이런 식으로 봄을 맞이하다니. 왠지 2월을 코로나 19에게 겨버린 기분이 든다. 아니 3월까지 그렇게 될 것 같아서 달갑지 않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 아까워서.


돌아다닐 수 없으니 집에서 뭔가를 해야 하는데... 재택근무로 하는 일 말고 뭘 할 수 있을까?

글을 쓰고는 싶은데, 요즘은 솔직히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 장편소설도 한 번 써봤고, 단편 소설도 써봤고, 에세이도 써봤다. 하지만 지금 다시 쓰려고 하면 머리가 하얗게 된다. 무슨 생각으로 그때 그렇게 썼는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썼는지도 모르겠다.


장편소설에는 내가 틈틈이 들어가 있어 쓰는 것이 그리 힘들지 않았다. 그래서 단편소설을 쓸 때는 완전히 나를 배제하고 쓰고 싶었다. 과연 내가 그렇게도 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서 말이다. 사실 다 쓰고 나니 장편소설보다 단편소설이 더 잘 쓴 것 같기도 하다. 뭐 아무도 못 봤기에 이렇게 말해도 확인할 길이 없다는 것이 다행이다.


일을 하면서도 글을 쓰고 싶은데 글은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기에 새로운 일을 시작한 나에게 아직은 사치인 듯하다. 그럼에도 조금이라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 일이 최근 있었다.


얼마 전 매우 훌륭한 작품 하나를 읽었다. 몇 달 동안 글다운 글을 써보지 않은 나는 그 글을 읽고 '나도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언제나 그랬듯 이 작가의 따뜻하고 아름다운 마음은 글과 사진에 퍼져있었다. 글을 읽는 동안 어떤 생각을 하며 글을 적었을지도 느껴졌다. 책 표지만 보는 사람은 이 조그마한 책에 이런 이야기가 담겨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작은 책 한 권이 담을 수 있는 무게가 아니니까.  그것을 다 담을 수 있었던 것은 작가의 그릇이 그만큼 컸기 때문에 가능했다 생각한다.


언젠가는 나도 작은 책 한 권에 어떤 무언가를 담고 싶다. 다시 생각해보니 이제 시작된 봄인데, 봄을 빼앗겨 버렸다고 생각하기에는 섣부른 것 같다. 나의 40대 첫 봄, 제대로 보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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