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화경 Mar 05. 2020

나에게 온 수많은 밤들.

밤은 고요하고 적막하다.


학생 시절 나는 어제에서 오늘로 넘어가는 시간을 좋아했다. 그보다 빠른 시간에 잠든다는 것이 왠지 모르게 아쉬웠다. 째깍째깍, 침대 위에 걸려있는 벽시계의 시곗바늘이 12시를 지날 때면 유독 시계 소리가 크게 들렸다. 어쩌면 내가 그 시간을 좋아했던 건 모든 가족들이 잠든 시간이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이 세상에 나만이 존재하는 듯 한 고요함. 편안하고 따뜻했다. 그 시간에는 항상 커피 한 잔을 타서 책상에 앉았다. 귀에는 이어폰을 꼽고 음악을 들으며 편지나 일기를 썼다.


그렇게 아름다웠던 나의 밤 시간은 직장 생활을 하며 사라졌다. 직장인의 밤은 그날그날의 피곤함을 구겨서 이불 안으로 집어넣게 했다. 그렇다고 새벽의 상큼함을 느낀 것도 아니었다. 나는 평범한 직장인처럼 똑같은 일상을 매번 살아가고 있었다.


스물여섯의 나이에 직장을 그만두고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기 전까지 나에게 밤은 두려운 존재가 되었다. 일주일에 세네 번은 새벽 2~3시쯤 들어오는 철없던 남편. 그런 남편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시계만 바라보고 전화 한 통 하지 못했던 사람이 나였다. 책을 봤다가 티브이를 봤다가 멍하니 침대 위에 앉아 있다가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내가 뭐 하는 건가 바보 같아 보였던 시간. 가장 나답지 못했던 시간이었고, 가장 아름답지 못했던 밤이었다.


아이를 낳고서의 밤은 전쟁이었다. 큰 아이가 두 살 전까지는 새벽에 수시로 깨어서 아이를 업고 거리를 활보할 때도 많았고, 둘째는 첫째보다는 수월했지만 초등학교 1학년 들어갈 때까지 새벽에 여러 번 엄마를 찾았다. 10년 동안 편히 자 본 적이 없었다. 지금은 손댈대 없이 척척 알아서 하는 아이들을 보면 그렇게 키웠을 거라 생각 못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이지만 말이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란 지금의 밤은... 행복한 시간이다. 책을 읽을 수도 있고, 일을 할 수도, 영화를 볼 수도, 글을 쓸 수도 있다. 물론 딸아이가 같이 침대에 누워 자자고 하지만, 무언가를 하고 싶을 때는 먼저 자라고 한다. 그리곤 내가 원하는 일을 맘껏 한다. 가끔 캔맥주를 따서 시원하게 마시기도 하면서 말이다.


나에게 온 수많은 밤들이 과거가 되었다. 다 아름다웠던 밤이라고는 말할 순 없다. 하지만 그 모든 밤들은  나에게 고마운 밤들이다. 결국은 나에게 많은 것들을 가르쳐 주었으니까. 앞으로 다가오는 밤은 어릴 적 내가 사랑했던 밤들처럼 편안하고 따뜻한 밤이 되길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봄을 빼앗겨 버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