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꿈꾸다.

by 김화경

38살 여름, 과거의 나로 돌아가 어릴 적 꿈을 떠올리며 잊고 있었던 나라는 사람에 대해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내가 무얼 좋아했고, 어떤 것을 하고 싶어 했고, 얼마나 빛나는 꿈을 가슴에 품고 있었는지를. 꿈을 버리고 나서 내가 한 것은 다시는 그 꿈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다른 꿈을 꾼 것도 아니었다. 그저 주어진 현실에서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할 뿐이었다.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가 원해한 일이었지만 1년이 지나면서 생계형이 되었고, 하기 싫어도 해야만 했다. 아들이 5살, 딸이 3살 때 처음 일을 시작해서 아무 생각 없이 쉼 없이 달려야만 했고, 작년 여름, 예전의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억을 더듬으며 나의 사십춘기는 시작되었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집안일은 혼자 했고, 육아도 거뜬히 홀로 해냈다. 직장에서의 일은 유치원생 아이 둘을 재우고도 새벽까지 나를 꿈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한마디로 지나가니 그냥 지나가는 날들이었다.


결혼 전의 하루하루는 나에게 의미 있었고,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소중했지만, 현재의 나는 하루하루에 의미가 없었고, 그냥 지나가니 지나가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커가도 그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몰랐다. 그때 당시만 해도 나는 내가 슈퍼우먼이라도 된 줄 알았다. 하지만 돌이켜 보니 그렇지 않았던 것 같아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가슴이 매였다. 내가 너무 힘드니까 아이들이 커나가는 순간순간의 행복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것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내가 잊고 있었던 것들을 기억해내며 나는 밑바닥까지 내려갔다. 나는 누굴 위해 이렇게 살고 있으며, 왜 이렇게 사는 것인지. 진정 행복한지, 아니면 불행한지, 결혼 전과 결혼 후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나와 대면하기 싫었지만 해야만 했다.


대면한 나는 결혼 전 당당했던 내가 아니었다. 그런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가정의 평화를 위해 배려라는 이름으로, 하고 싶은 말들을 마음속에 묻어버린 채 수많은 날들을 보내고 있는 나만 존재했다. 그때는 그게 옳은 것인 줄 알기에 그렇게 살았다. 내 속이 곪아 터지는 것은 모르는 채로.


그것들을 인지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지하세계까지 내려갔고 다시 지상으로 올라올 수가 없었다. 아침마다 눈 떠지는 게 싫었고,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도, 그저 아무것도 몰랐던 과거로 다시 돌아가서 시간이 흐르면 흐르는 대로 살아가고 싶었다. 그게 훨씬 편했으니까. 하지만 세상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나에게 이겨내라 했고, 힘들어도 견뎌내라 했다. 결국 지금은 그 시간이 나의 삶을 바꾸게 해 준 시간이었기에 고통이 감사하게 느껴지는 경지까지 오르게 되었지만 다시 가라고 한다면 솔직히 자신은 없다.


사십춘기로 방황하며 힘든 시기를 보낼 때 내가 가장 먼저 선택한 것은 여행이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홀로 여행을 해본 적이 없었고, 정말 가보고 싶었던 여행지도 이 나이가 되도록 가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1박 2일의 짧은 여정임에도 엄마라는 이름의 사람은 쉽게 집 밖으로 발길을 내딛지 못한다. 어딜 가도 껌딱지처럼 아이들을 데리고 다녀야 하고, 잠시라도 떨어지면 죽기라도 하는 줄 아는 아이들 때문에 엄마에게 홀로 여행이라는 것은 사치이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평생 떠나지 못할 것 같아 나는 떠났다.


이른 아침, 아이 둘을 신랑에게 맡기고 홀로 여행길에 몸을 실었다. 평소라면 보내주지 않았겠지만 나의 상태를 알기에 강원도 양 떼 목장으로 향하는 나에게 아무 말하지 않고 다녀오라 했다. 그 순간의 여행은 내 생애 가장 아름다웠고, 영원히 간직하고픈 여행이 되었다.


여행을 다녀온 뒤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 처음으로 여행 에세이라는 것을 적었고, 여행 에세이 공모전에도 출품을 하였다. 당연히 대상의 상금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내 눈에는 마지막 상의 상금, 문화상품권 3만 원이었던가? 5만 원이었던가 그것만 보였다. 사실 나는 글과는 인연이 없는 사람이었고, 학창 시절 12년 동안 한 번도 글로 상을 받아본 적이 없었기에 문화상품권이라는 목표도 나에게는 큰 것이었다.


공모전 결과가 발표 나는 날. 당선된 이름들 중 나의 이름이 나열된 것이 눈에 들어왔고 심사평을 읽어 내려가면서도 나의 글에 대한 심사평이 나오지 않아 마지막 상에 당선되었구나 싶어 그것도 어딘가 하며 행복해했었다. 그런데 심사평 마지막에 대상이라는 단어와 나의 이름이 같은 줄에 적혀있는 것이 보였다.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대상이라니.


사람이란 동물은 참 신기하다. 지하세계에서 맴돌고 있던 내가 어느 한 곳에서 인정해주었다고 지상세계로 올라오다니. 살면서 뭔가를 잘해서 상을 받은 적이 거의 없어서 더 벅찼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가슴 벅찬 순간이었다. 노벨문학상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고,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일인 줄 몰랐다. 처음이었다. 그래서 다시 꿈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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