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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풍뎅이 Dec 18. 2019

'잠'이가 안와

어쩌면 서로의 기다림


어하다 보니 밤 열 시가 넘어 있었다.


어제 저녁 일찍 들어온 남편과 다 같이 뜨끈한 어묵탕에 밥을 먹고, 후식으로 꽈배기도 먹고 늘어져 있다가 설거지도 뒤늦게 했더니 저 시간이었다.  빨리 자자하고 불 다 끄고 누웠더니 그때부터 시작된 수다. 그 수다는 열두 시에 끝이 났다. 

자는 척하면 발가락으로 내 머리카락을 쥐며 장난치고 대답할 때까지 '엄마엄마엄마엄마' 끝도 없이 불러서 많은 인내가 필요했다. 등 돌리고 코 고는 척하다 

잠이 안 와? 하고 물어보니  "응. 잠 이가 안 와." 하는 딸.

등 토닥토닥해줄게 하며 등을 토닥여도 쉽게 잠들지 못하고 웃고 떠들고를 반복하다 겨우 잠이 들었다.


그전엔 30분 내외로 잘 잠들던 아이인데 점점 잠을 안 자려 한다. 어린이집 가서도 낮잠을 안 자고 올 때가 많고(그래서 그날은 일찍 자겠지 기대해도 열시는 돼야 잔다) 주말엔 당연히 낮잠을 자지 않는다. 

어쩌다 낮잠을 건너뛰면 저녁 먹으며 졸고 밥 한 숟가락 먹여볼라치면 울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지금은 저녁밥 먹을때도 쌩쌩하고 잠잘 때쯤 되면 잠이 깬 것처럼 더 쌩쌩해진다. 아이가 체력이 좋아지니 낮잠 자고 싶은 건 나와 남편이다. 그래서 주말엔 가끔 돌아가며 자기도 한다. 

젯밤에도 빨리 재우고 오랜만에 팩 좀 붙이고 맥주랑 오징어도 먹어야지 했는데 그리 늦게 잘 줄은 몰랐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인내가 제일 중요함을 느낀다. 열 달의 기다림 끝에 나온 아이에게 밤중 수유를 하며 언젠간 자게 될 통잠을 기다리고, 홀로 앉고, 기어 다니고, 걷고, 조잘조잘 말문이 트일 때까지 기다림의 연속이다. 제맘대로 되지 않아 화를 내고 짜증 부릴 때도, 아침에 시간 없는데 혼자 신발 신겠다고 우길 때, 어제처럼 안 잘 때도 기다려야 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엄마인 내가 초조해하고 답답해하면 결국 그 조바심이 화로 변해 아이에게 간다. 

화가 입 밖으로 나오기 전 단계에서 멈춰야 하는데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그래서 일부러 재울 땐 마음속으로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먹고 싶은 걸 생각하고 이불속에서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그래야 안 잔다고 욱하는 대신 조금 아라도 기다려줄 수 있기에.


내가 인생에서 이렇게 누굴 기다려준 적이 있었을까? 아이가 생기기 전까진 결코 없었다. 

나의 잠을 포기하고 나의 시간을 포기하면서까지 기다려주고 기다려야만 하는 '아이'에게 

매 순간 복장 터지고 울화가 치밀 때도 많지만 오늘도 기다려주자. 

어쩌면 아이도 엄마를 기다려주는 중일지도 모른다. 같이 성장하기 위해, 엄마의 욱하는 성질이 가득담긴 작은 그릇이 넓어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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