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패딩을 입고있던 그녀
지지난주의 일이다. 그날은 눈이 내렸다. 딸을 데려다주고 나니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집에서 쓸까 하다 눈 오는 분위기를 느껴보고자 늘 가던 집 앞 카페로 향했다. 눈 오는 창가를 한번 보고 노트북 화면도 열심히 들여다보고 손가락도 바삐 움직이던 중 옆옆자리에 마흔살 정도 되보이는 여자가 와서 앉는 걸 봤다. 이상하게도 자꾸 옆에서 힐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날 아는 사람인가 싶어 쓱 쳐다보니 낯익은 얼굴은 아니었다.
"눈 내리는 게 예쁘네요" 뜬금없이 말을 건다. "네. 눈 내리는 거 보니까 좋네요." 했더니 그때부터 옆자리로 와서 뭐 하고 있는지 공부하는지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한다. 아이 등원시키고 그냥 공부도 하고 커피도 마실 겸 온 거라 하니 자신도 유치원 다니는 딸을 등원시키고 온 거라고 한다.
여자: " 혹시 교회 다니세요?"
나: "아니요. 안 다녀요."
여자: "아 여기에 큰 교회가 있어 물어봤어요."
본인도 교회 안 다닌다고 한다. 그때까진 전도할 요량으로 말 거는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니라길래 그냥 심심해서 말거나 싶어 좀 더 적극적으로 여자의 말을 들었다.
근 3개월 동안 신경 쓸게 많아 우울했다길래 뭐 때문에 그러세요. 무슨 걱정 있으세요? 했더니
다소 충격적 이게도 여자는 다른 남자가 자꾸 신경이 쓰여 우울하다고 한다.
나보곤 우울해본 적 있냐길래 아이 낳고 많이 우울했었다 하니 자긴 아기 낳고 기를 때도 한 번도 우울한 적 없었다고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전혀 공감 안 되는 얼굴로. (지금도 우울할때 있다고 말하려다 말았다. )
아무튼 처음 보는 사이에 뭐 저런 말까지 하나 오죽 답답하면 나한테 털어놓나 좀 안쓰러운 마음에 계속 그녀의 하소연을 들었다. 세 달 전에 처음 만난 그 남자는 심리학과 대학원까지 나온 심지어 34살 연하남인데 자꾸 본인에게 들이댄다고(?) 만나자고 한다며 어떡하면 좋겠냐고 물어보는데 몹시도 당황스러웠다.
속으론 이상해 이상해를 연발하며 '사람은 누구나 흔들릴 때가 있다. 그래도 가정을 지키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답했다.
그 이후로도 옆에서 끊임없이 말을 걸어 결국 아이 데리러 가야 해서요 하며 주섬주섬 짐을 챙겨 집으로 왔다. 남편에게 문자로 좀 이상한 사람을 만났다고 상황설명을 하니 처음엔 뭐 그런 미친 여자가 다 있냐더니 신천지 아니야? 그런다. 길을 가다 '도를 아십니까 혹은 인상이 좀 안 좋네요. 제사를 지내야겠네요.' 뭐 그런 비슷한 종교인가 보다. 나는 그들의 표적이 된 적이 종종 있었다. 특히 혼자 다닐때. 대학 때는 강의실 앞까지 끈질기게 쫓아와 무섭기도 했었고 순진한 얼굴로 길을 물어보다 자연스레 저런 말을 하던 그들에게 분노를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카페에서 이렇게 접근하는 경우는 처음이라 그 수법이 많이도 진화했구나 싶다. 그런 일이 있고 단골 카페에 가는 것이 왠지 꺼려졌다. 날 알아보고 또 접근하면 어쩌나 그런 상황에 대비한 대답까지 미리 생각해놨었다. "죄송한데 제가 바빠서요. 시간이 없네요."
그래도 말 걸면 자리를 옮겨버리자 하고 마음속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 이후론 안보였고 난 안심하고 마음껏 카페를 드나들었다.
그러던 바로 어제, 수요일. 난 늘 앉던 구석자리에 자리를 잡았는데 패딩차림의 낯익은 실루엣이 저번과 똑같이 내 옆 옆자리에 앉았다.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난데 얼굴을 보자마자 바로 알아봤다. 아는 척하려는 모양으로 힐끔거리길래 누구세요 라는 표정으로 무심히 쳐다봤다. 커피도 안 시키고 한참을 그렇게 앉아있더니 그냥 나가버렸고 나는 다시 안도감을 되찾았다.
문득 나한테 말해준 유치원 다닌다던 6살 딸의 존재는 사실일까 궁금해졌다. 생각해 보니 나는 내 나이와 딸, 이 동네 사는 것 까지 물어보는 족족 다 대답해줬는데 정작 본인의 나이와 사는 곳은 전혀 알려주질 않았다. 그래도 종교에 빠졌거나 혹은 다른 사연이 있을지도 모를 그녀가 아이를 거짓으로 꾸며내진 않았을거라 그렇게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