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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풍뎅이 Dec 19. 2019

눈오던 날의 카페

그리고 패딩을 입고있던 그녀


지지난주의 일이다. 그날은 눈이 내렸다. 딸을 데려다주고 나니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집에서 쓸까 하다 눈 오는 분위기를 느껴보고자 늘 가던 집 앞 카페로 향했다. 눈 오는 창가를 한번 보고 노트북 화면도 열심히 들여다보고 손가락도 바삐 움직이던 중 옆옆자리에 마흔살 정도 되보이는 여자가 와서 앉는 걸 봤다. 이상하게도 자꾸 옆에서 힐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날 아는 사람인가 싶어 쓱 쳐다보니 낯익은 얼굴은 아니었다.


"눈 내리는 게 예쁘네요" 뜬금없이 말을 건다. "네. 눈 내리는 거 보니까 좋네요." 했더니 그때부터 옆자리로 와서 뭐 하고 있는지 공부하는지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한다. 아이 등원시키고 그냥 공부도 하고 커피도 마실 겸 온 거라 하니 자신도 유치원 다니는 딸을 등원시키고 온 거라고 한다.


여자: " 혹시 교회 다니세요?"

나: "아니요. 안 다녀요."

여자: "아 여기에 큰 교회가 있어 물어봤어요."


본인도 교회 안 다닌다고 한다. 그때까진 전도할 요량으로 말 거는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니라길래 그냥 심심해서 말거나 싶어 좀 더 적극적으로 여자의 말을 들었다.


근 3개월 동안 신경 쓸게 많아 우울했다길래 뭐 때문에 그러세요. 무슨 걱정 있으세요? 했더니

다소 충격적 이게도 여자는 다른 남자가 자꾸 신경이 쓰여 우울하다고 한다.

나보곤 우울해본 적 있냐길래 아이 낳고 많이 우울했었다 하니 자긴 아기 낳고 기를 때도 한 번도 우울한 적 없었다고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전혀 공감 안 되는 얼굴로. (지금도 우울할때 있다고 말하려다 말았다. )

아무튼 처음 보는 사이에 뭐 저런 말까지 하나 오죽 답답하면 나한테 털어놓나 좀 안쓰러운 마음에 계속 그녀의 하소연을 들었다. 세 달 전에 처음 만난 그 남자는 심리학과 대학원까지 나온 심지어 34살 연하남인데 자꾸 본인에게 들이댄다고(?) 만나자고 한다며 어떡하면 좋겠냐고 물어보는데 몹시도 당황스러웠다.

속으론 이상해 이상해를 연발하며 '사람은 누구나 흔들릴 때가 있다. 그래도 가정을 지키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답했다.


그 이후로도 옆에서 끊임없이 말을 걸어 결국 아이 데리러 가야 해서요 하며 주섬주섬 짐을 챙겨 집으로 왔다. 남편에게 문자로 좀 이상한 사람을 만났다고 상황설명을 하니 처음엔 뭐 그런 미친 여자가 다 있냐더니 신천지 아니야? 그런다. 길을 가다 '도를 아십니까 혹은 인상이 좀 안 좋네요. 제사를 지내야겠네요.' 뭐 그런 비슷한 종교인가 보다. 나는 그들의 표적이 된 적이 종종 있었다. 특히 혼자 다닐때. 대학 때는 강의실 앞까지 끈질기게 쫓아와 무섭기도 했었고 순진한 얼굴로 길을 물어보다 자연스레 저런 말을 하던 그들에게 분노를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카페에서 이렇게 접근하는 경우는 처음이라 그 수법이 많이도 진화했구나 싶다. 그런 일이 있고 단골 카페에 가는 것이 왠지 꺼려졌다. 날 알아보고 또 접근하면 어쩌나 그런 상황에 대비한 대답까지 미리 생각해놨었다. "죄송한데 제가 바빠서요. 시간이 없네요."

그래도 말 걸면 자리를 옮겨버리자 하고 마음속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 이후론 안보였고 난 안심하고 마음껏 카페를 드나들었다.



그러던 바로 어제, 수요일.   앉던 구석자리에 자리를 잡았는데 패딩차림의 낯익은 실루엣이 저번과 똑같이   옆자리에 앉았다. 사람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난데 얼굴을 보자마자 바로 알아봤다. 아는 척하려는 모양으로 힐끔거리길래 누구세요 라는 표정으로 무심히 쳐다봤다. 커피도  시키고 한참을 그렇게 앉아있더니 그냥 나가버렸고 나는 다시 안도감을 되찾았다.


문득 나한테 말해준 유치원 다닌다던 6살 딸의 존재는 사실일까 궁금해졌다. 생각해 보니 나는 내 나이와 딸, 이 동네 사는 것 까지 물어보는 족족 다 대답해줬는데 정작 본인의 나이와 사는 곳은 전혀 알려주질 않았다. 그래도 종교에 빠졌거나 혹은 다른 사연이 있을지도 모를 그녀가 아이를 거짓으로 꾸며내진 않았을거라 그렇게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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