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수풍뎅이 Dec 23. 2019

내 이름은 윤이엄마


주말에 시할머님 생신이라 시댁에 다녀왔다.

멀리 떨어져 사는 손주와 증손주를 늘 보고 싶어 하시고 무엇보다 많이 연로하시기 때문에 생신 모임이 있을 땐 꼭 참석하고 있다. 우리 시댁 가족들, 작은 아버님들, 어머님들, 고모님, 고모부, 남편의 사촌동생들까지 대인원이 모여 오리 백숙을 먹었다. 딸은 초저녁 잠을 곤히 자다 식당에 도착하자 깼는데 낯선 어른들이 많아 낯가리느라 밥 먹는 내내 엄마 아빠 무릎 위에만 앉아 있었다. 밥도 안 먹으려는 아이 먹여보려고 얇게 찢은 고기에 소금을 살살 찍어주니 아기새처럼 잘 받아먹는데 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다.


서로 오랜만이라 시끌벅적한 분위기였는데 무슨 얘기 끝에 고모님이 저기 누구지? 한참 생각하시더니 윤이 엄마는 살이 좀 빠진 것 같다고 하셨다. 결혼 전엔 땡땡이 여자 친구, 결혼 후엔 땡땡이의 처, 출산 후엔 윤이 엄마. 시댁 모임에서 내 이름으로 불린 적은 없었다. 사실 나도 고모님의 이름을 모른다. 고모님도 나에겐 남편의 고모라고만 불리고 있지 않은가. 서운할 것도 없다. 되려 이젠 윤이 엄마로 불리는 게 더 편하고 내 이름처럼 친숙하다.

출산한 지 얼마 안 됐을 땐  '엄마' 라 불리는 게 나완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마냥 영 어색하고 이질감이 들었는데 이젠 이름같이 느껴지니 나도 많이 변했나 보다.


단 하나 아직 적응이 덜 된 것이 있는데 바로 윤이야~라고 부르실 때다. 나를 부르시는 건지 손녀를 부르시는 건지 긴가민가 하다. 주방에서 부르시면 대부분 나고 거실이나 방에서 부르실 때는 손녀인데 그래도 헷갈릴 때가 종종 있다. 출산 후 언제부터인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자연스레 내 이름에서 딸아이의 이름으로 불리게 되며 때론 이방인이 된 것처럼 서운하기도 했고 내 존재가 개미만 해진 것 같아 괜히 울컥했을 때도 많았다.


얼마   퀴즈   블록에 나오는 유재석은 연령에 상관없이 길에서 만난 어린이, 아저씨, 아주머니, 어르신들께 항상 이름을 물어본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 채널 돌리다 봤던  퀴즈  그는 제주도에서 만난 해녀 할머니를 oo 씨라 부르고 있었다. 사소한  같지만 어떤 호칭 없이 순수하게 ' 사람 자체' 물어봐준다는  쉬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그의 깊은 마음 씀씀이에 상당한 울림과 감동도 받았다. 나조차도 놀이터에서 만난 아이들에게  살이야? 나이를 먼저 물어봤지 이름을 먼저 물어보진 않았으니까.


이름을 물어보고 불러준다는 것은 단순해 뵈지만 생각보다 큰 의미를 주는 일이 아닐까? 이름을 묻는 물음 속엔  " 당신은 어떤 역사를 가진 사람인가요.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떤 틀이나 선입견 없이 당신을 있는 그대로 보고 싶어요." " 친밀한 사이가 되고 싶어요."  이런 속뜻들이 숨어 있는 것 같아 왠지 마음이 따뜻해진다.


어느새 어른이 되어 얽힌 관계 속에서 누구의 처, 누구의 엄마로 불리지만 나부터라도 가까운 이들에게 혹은 놀이터에서 만나는 아이들에게, 매일 마주치는 동네 언니에게 이름을 불러주고 싶다.

밤하늘에 수많은 별이 저마다의 빛을 내듯이 많은 이름들이 묻히지 않고 반짝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매거진의 이전글 눈오던 날의 카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