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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풍뎅이 Dec 24. 2019

미역국 그리고 아이스크림 케이크

미역국을 끓이고 있던 저녁이었다.


여덟 시가 넘은 늦은 저녁이라 마음이 급했다. 분주하게 국에 넣을 소금을 꺼내려 가스레인지 위에 있는 찬장을 열었다. 열자마자 소금통은 냄비 손잡이로 떨어졌고 기우뚱하던 냄비가 내 앞으로 기울던 순간 보글보글 끓던 미역국이 그대로 내 배와 다리로 쏟아졌다. 아픈 줄도 모르고 그냥 멍해졌다.


남편은 다급하게  앞으로  살살 옷을 걷어주며 빨리 욕실로  찬물로 식히라고 했다. 아바타처럼 그저 남편이 시키는 대로 했고, 딸아이는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으니 울며  그러냐고 계속 물었다.

남편은 서둘러 약국에 가 응급 처치할 약을 사 왔고 다음날 아침 근처 피부과를 가보기로 했다.

찬물에 식히고 나니 그제야 후끈후끈 살이 아려왔다. 다행히 부위가 크진 않아서(배 옆쪽과 허벅지 위였다.) 참을 만했다.


그렇게 셋다 많이 놀랐던 밤이 지나고 다음날 피부과를 갔다. 어쩌다 이렇게 됐냐고 물어보시길래 미역국 끓이다가 냄비가 쏟아졌어요.. 하니 잽싸게 피하셨어야죠 하는 농담을 던지시며 치료를 해주셨다. 물집이 크게 잡혀서 물집을 터트리고 소독약?으로 박박 문지르는데 너무 아파서 억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 후로도 일주일에 두 번씩 꼬박 3주 동안 병원을 다녔고 치료받는 동안엔 물 닿으면 안 된다고 해 남편이 칼퇴근하고 와 아이 씻기고 놀아주고 했다.(고생 많았어.)  길고 길었던 치료가 끝나고 흉터는 조금 남았지만 눈에 안 보이는 곳이라 그다지 신경 쓰이진 않았다. 그리고 다가올 2019년을 대비해 미리 액땜했다 셈 쳤다.


작년 12월 30일의 일이니 벌써 1년이 다되어간다. 화상 사건 이후로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손잡이가 길던 그 냄비와 마침 잘 안되던 전기포트를 버렸고 주방 찬장에 떨어질 만한 물건들은 아예 치웠고 요리할 때 절대 아이는 부엌으로 오지 못하게 하고 있다. 남편과 나는 그때 만약 아이가 내 발치에 있었으면 어쩔 뻔했냐는 최악의 상상을 하며 하늘이 도왔다고 입을 모았다. 그 아팠던 화상치료를 떠올리니 차라리 내가 아픈 게 낫지 아이가 저렇게 아팠으면 죄책감에 화상의 고통보다 더 괴로웠을 거다.


내가 요란하게 12월의 마지막 날을 보냈고 1 1일엔 딸아이가 아팠다. 전날 먹은 아이스크림 케이크가   좋았던지 장염이 와서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았다. 남편만 빼고 아팠던 새해가 지나고 어느덧  연말이 다가왔다. 이번 연말은 정말 조심해야겠다. 뜨거운 , 너무 차가운   .

어쩐지 아이를 키우며 점점 겁쟁이가 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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