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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풍뎅이 Jan 02. 2020

언니와 동생

너희들도 언니와 동생 사이


어제 오후, 동생네서 그동안 풀었던 짐을 다시 싸고 시댁에 잠시 들러 떡국을 먹고 신정이라 엄청 밀릴 것을 예상해 서둘러 나왔다. 의외로 가는 길이 밀리지 않아 국도로 빠져 꼭 들러보고 싶었던 카페에서 커피도 마셨다. 무려 7천 원짜리 딸기우유가 먹고 싶다 징징거리던 아이는 자리에 앉자마자 졸려해 남편의 품에서 1시간 동안 단잠을 잤다. 그 덕분에 오래간만에 여유 있게 커피를 마셨다. 매일 딸과 조카와 씨름하느라 동생과 여유 있게 커피 한잔 하러 나가질 못했는데 지나 놓고 보니 동생이 너무 안쓰러워진다.


잦은 야근과 종종 주말도 출근하는 제부라 7개월  임산부인 동생은 3 아이를 온전히 혼자 돌보고 있다.  

어딜 가려면 꼭 택시를 타야 하고 주변에 편의시설도 별로 없을뿐더러 조카가 아직 어린이집에 다니질 않아 어쩌다 약속이라도 잡히면 모를까 하루 종일 둘이 집에 있는 날이 많다. 점점 배가 불러와(둘째는 배가 금방 나온다던데 정말 많이 나와 있었다) 이젠 움직이는 것도 힘들어 보인다. 게다가 조카는 온갖 물건들을 다 쏟아내고 주방 서랍장도 다 열어젖히고 한참 흥이 오르면 주체하지 못할 정도의 에너지를 뿜어 잠시 있던 나도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얼마나 힘들지 알기에 우리 집이 좀 더 넓었더라면 동생이랑 조카를 데려오고 싶을 정도로 헤어질 때 마음이 많이 쓰였다.


이모네에서 장난 아닌 질투를 했던 딸도 어제저녁을 먹으며 "동생 없이 혼자 먹으니까 입맛이 없어." 라며 제 나름의 그리움을 표현한다. 둘이 다툴 때(거의 딸아이의 일방적인 화였지만) 하도 머리가 아파 다신 방학 때 오지 말까 보다 했는데 나도 그새 둘이 그리워지는 중이다. 지금은 뭘 하고 있을까? 아마 조카가 낮잠을 자고 있겠지?


멀리서 내 아이 챙기느라, 또 같이 있는 동안도 내 아이 서운할까 조카를 제대로 꼭 안아주지도 못했다. 동생을 질투하는 딸의 모습도 이제 제법 의젓해졌다 여긴 내 기준에 못 미친다 생각해 미워 보이기까지 했다. 딸은 딸대로 조카는 조카대로 누구 하나 제대로 신경 못써준 어설픈 엄마이자 이모였다.


내 멋대로 '착한 아이' 기준을 만들고 벗어나면 뒤끝 있게 굴었던 나.

하루에 몇 번을 다투면서도

시키지도 않았는데 냉장고 문을 열고 귤 두 개를 꺼내 제 언니 먼저 주고, 엄마에게 빵 하나 얻어내 반을 잘라 언니를 주던 조카

미끄럼틀 위에 있던 동생이 위험해 보였는지 올라가서 잡아주며, 제가 먹는 영양제도 꼭 동생 하나씩 나눠주는 딸아이

말랑말랑 유연한 둘의 마음은 몸만 큰 나보다 더 넓은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직 멀었지만 여름방학 땐 또 조카 동생 '또복이'가 있을 테니 가봐야겠다. 아이 셋은 도대체 얼마나 힘들지 체험도 할 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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