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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풍뎅이 Jan 18. 2020

작은 거인 'A언니'


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 같은 반 엄마를 봤다. 아이를 차에 태우고 있는 낯익은 뒷모습에  "언니"하고 손을 흔들며 잘 가란 인사를 했다. 


편의상 A언니라 지칭하겠다. A언니는 사람이 늘 밝다. 아이가 셋인데 지친 얼굴을 거의 본 적이 없다. 언제나 활기차다. 목소리도 크고 씩씩하다. 뭘 하나 먹어도 항상 언니가 산다며 계산하려 한다. 고향이 부산이라 했는데 억양에서 말투에서 부산 사투리가 진하게 묻어 나온다. A언니를 처음 만난 건 재작년 2월 어린이집 신입생 오티 때였다. 말 한마디 섞진 않았지만 그녀의 활기찬 말투와 예쁘장한 얼굴은 기억에 오래 남았다.(아이가 셋이라길래 적잖이 놀랐다.) 4월 무렵 나처럼 딸 하나 키우는 B언니와 친해졌는데 어쩌다 A언니와 셋이 브런치를 먹게 된 적이 있다. 난 말이 없는 편이라 주로 듣기만 했고 대화는 언니들이 이끌었다. A언니의 아이 셋 키우는 얘기를 듣다 보니 저리 마른 체구에 그런 강인함은 어디서 오는 건지 궁금해졌다. 아이와 버스 타기도 겁내고 어디 멀리 가는 것도 어려워했던 나와는 달리 언니는 혼자 셋을 데리고 직접 운전해 부산까지도 가고 차가 없을 적엔 버스 타고도 종종 갔다고 한다.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도 우리 어릴 적 언니,나,동생과 버스로 친정도 가고 병원도 갔었단다. 한 명은 업고 나머지 둘은 양손으로 잡고. 세대도 다르고 외모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지만 엄마와 A언니의 모습이 묘하게 겹쳐보였다. 


깊이 친하지도 않고 만나면 살가운 대화를 하는 사이도 아니지만 나는 A언니가 그냥 좋다. 엄마 생각이 나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내게 없는 유쾌함과 명랑함을 가진 사람이라 그럴지도 모른다.


작년 11월 즈음 마주친 A언니는 부쩍 더 말라 보였다 .


"언니 어째 살이 더 빠져 보여요." 

"언니 요즘 아르바이트하잖아. 아는 사람 부탁으로 오전에 잠깐 해주고 있어."

"와. 언니 부지런도 하네요. 안 힘들어요?"

"할만해. 괜찮아."


씩 웃는 언니의 미소로 끝난 대화.


부지런의 표본인 그녀는 아이 한 명 추스르는 일에도 허덕였던 내게 부끄러움을 안겨줬다. 시간이 안 맞아서 거리가 멀어서 아이 아프면 맡길 데가 없다는 핑계로 선뜻 시도조차 안했던 '알바'도 그렇고 고될 텐데 항상 밝은 표정, 상대방에게까지 전해지는 쾌활함은 난 그런 성격 아니라며 외면했던 타인에 대한 배려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내 마음속 작은 거인이다. 비록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온 마음을 다해 언니의 엄마로서의 삶과 언니 자신의 삶을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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