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밝다

by 송해리

영화만 주야장천 보고 싶다.

음악만 하염없이 듣고 싶다.

불안이라는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작품만 맛보며 한량처럼 살고 싶은 마음이다.


돈이 필요하다.


누군가 나에게 매 달 돈을 주면,

내가 좋아하는, 내가 접했던 예술에 대해 이야기해 주고

내 감정, 생각, 그 모든 것들을 낱낱이 알려주어 영감의 원천이 되어주는 삶을 상상해 본다.


마냥 쉽기만 할 것 같지는 않지만,

내 모든 표현을 돈이라는 가치로 충분히 받을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좋을까.

내 방에서 숨죽여 자고 있는 그림에게 연민을 느낀다.


나는 예술에의 환상을 쫓는 걸까.

매일매일 쓰고. 보고.

그것만으로도 거저 주어지는 풍요가 있다면,

세상을 기쁘게 용서하고 깊이 사랑할 수 있다.


난 내가 악독하게 느껴질 때 죄스럽다.

그 죄스러움이 수치심으로, 수치심이 쪼그라듬으로

내 영혼의 빛을 죽인다.

미친 듯이 악독해지고 싶을 때,

다 파헤치고 찌르고 싶어질 때

어차피 인간은 '오직 선할 수는 없구나'라고 위안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악도 내 환상 안에 있을지 모른다.

악이 사랑이 되고 사랑이 독이 되기도 하는 세상이기에, 그래서 결코 모른다.


-


햇살이 밝다.


발가락 끝이 시려서 몹시 차가운데, 해가 따사로이 밝게 비추고 있다, 내 세상을.

내 방을. 내 공간을.

햇살은 언제나 밝다.

그렇지만, 나에게 그 밝음이 언제나 반갑지만은 않았다.

아침이 온다는 게 끔찍한 적이 수일, 수년이었다.

지독하게 외로웠지만,

그럼에도 언제나

햇살은 나를 비추고 있었다.


이것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영원불멸한 존재함. 그 자리에서 태양은 늘 빛나니까.

세상은 언제나 나를 같은 자리에서 사랑해주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겠다.

태양이 뜬다는 사실을 의심한 적 없으니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으니까.

언제나 태양은 그 자리에서 뜨고 진다.


어쩌면 세상은 내가 원하는 것을 줄 수 있는 준비를 이미 해놓았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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