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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영주 Jan 20. 2024

결혼 시그널과 결정

시그널: 가진 거 다 주고 싶어 하는 남자와 결혼하기

어느 날 아이작이 나에게 말했다. "나 결정했어. 영주한테 다 주기로."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소리를 질렀다. "뭐?!!"  아이작은 깜짝 놀라 왜 그러냐고 했고 나는 오래전에 썼던 나의 메모장을 그에게 보여줬다. 


나는 영감이 떠오르는 것을 주로 네이버 메모장 어플에 기록한다. 2021년 4월 21일 문득 영감이 떠올라 이렇게 메모장에 적었다. <시그널: 가진 거 다 주고 싶어 하는 남자와 결혼하기> 


무심하게 적어두고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작이 그 말을 하는 순간 내가 썼던 메모가 딱 떠오른 것이다. 나는 슈퍼 T 라 저 말을 들었을 때 감동이야..! 도 있었지만 디테일하게 물었다. '다 주기로' 한 범위가 어디까지이냐. 마음, 목숨, 돈, 뭘 다 어떻게 주고 싶다는 건지 물었다. 아이작은 이렇게 대답했다. 돈은 주기 가장 쉬운 부분이고, 마음을 100% 오픈해 자신을 내어주는 것은 조금 더 어려운 부분이지만 이 부분까지도 주기로 결정했다고. 


 아이작의 다 주겠다는 결정 안에는, 받겠다는 결정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이작은 극단적으로 독립적인 사람이다. 누군가에게 뭘 받는 것을 꺼리고 늘 스스로 혼자서 하려는 사람. 확고한 주관을 갖고 절대 흔들리지 않는 사람. 이런 극단적 독립성은 자칫 상대방에게 무력감을 줄 수 있다. 스스로 다 하려고 하니 상대방이 낄 틈이 없는 것이다. 아이작의 다 주겠다는 결정은 아이러니하게 다 받겠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상대방이 내 삶에 영향을 주는 것을 허락하기로 한 큰 결정. 


그날 그는 스스로의 취약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나는 사실.. 이런 사람이야." 그의 취약성은 나와 비슷했다. 스스로 기준이 높아 하나라도 실수하면 실수를 곱씹고 괴로워하는 사람. (살짝의 완벽주의 성향) 쿨하고 멋진 모습만 보여주기보다 취약성을 보여주니 그가 더 매력적이게 느껴졌다. 또 내가 감싸줘야 할 부분을 찾게 되어 내 역할이 생김에 기뻤다. 


나는 물 흐르듯 가는 것도 좋지만 '결심'과 '결정'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 흘러가듯'안에는 자연스러움으로 잘 포장되어 있지만 무책임도 포함되어 있다. 특히 결혼 시기를 넘기는 장기연애를 하며 언젠가 하겠지 하는 커플들을 자주 보게 된다. 결정하지 않고 아무도 행동하지 않으면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부모님의 성화로 자연스럽게 결혼을 하게 되었다면 그건 내 인생의 결정권을 부모님에게 넘기는 일이다. 우리가 독립적인 성인이라면 인생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그 책임을 미뤄서는 안 된다. 


아이작은 일찍이 나에게  <Commit to Youngjoo : 영주에게 헌신하기>라는 자신의 결심을 이야기했다. 결혼 결정에 관해선 이렇게 이야기했다. "90%가 맞는데 100%를 찾으려고 90%를 포기하는 건 바보 같은 일이다. 100% 맞는 사람은 없고 90% 맞으면 결정해야 한다. 인생에 그런 사람 만나는 거 쉽지 않다." 우리가 90% 맞으니 자기는 결혼을 결정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이작보다 결정이 오래 걸렸다. 결혼에 관한 온갖 두려움들이 몰려왔고, 내 선택이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낮은 자존감도 한몫했다. 인생에 많은 도전이 있었던 것만큼 많은 실패도 있었기에 결정과 책임의 무게를 잘 알아 두려웠다. 


그래도 두려움을 이겨내고 용기를 내어 나도 그와의 결혼을 결정했다. 결정을 하면 신기하게 모든 두려움과 불안이 사라진다. 기시미 이치로가 쓴 <불안의 철학> 책에 따르면 불안은 결정을 미루기 위해 만들어낸 감정이라고 한다. 내 여러 불안은, 결정을 통해 사라졌다. 


결정 후엔 전진이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앞으로 한 발짝 나아가 눈을 떠보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져있다. 삶의 다음 단계로의 진입. 게임으로 치자면 레벨업,  NEW 서버 접속 느낌. 


오늘 글의 끝도 역시나, 아이작에게 감사함으로 마무리한다. 먼저 헌신하기로 결정해 줘서 고맙고, 다 주기로 결정해 줘서 고마워. 잘해보자 우리. 



os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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