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해한 존재로부터 배우는 것들
몇 해 전 어느 순간부터 식물을 키우는 것이 유행하고 있다.
유행에 잘 휩쓸리는 나 역시도 그 흐름에 따라 식물을 키우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리하여 우리 집 베란다는 크고 작은 화분들로 가득하다.
식물이 주는 힘은 생각보다 강력해서 같은 공간에 식물이 있고 없음에 따라 공간의 분위기를 크게 좌지우지한다. ‘플랜테리어’라는 단어가 괜히 생긴 게 아닌 것이다.
처음 한 해는 남들이 가진 식물, 남들이 못 가져 안달 난 식물, 다 갖고 싶어서 식물 관련 계정과 사이트를 매일매일 찾아보고, 사들이곤 했다. 당시 유행하는 식물이 무언지도 자연스레 알게 되기도 했고.
그러는 사이 많이도 죽이고(?) 꽤 오래 함께 살기도 하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어느덧 애정이 가는 식물은 유행하는 유명한 식물이 아니라 나와 함께 잘 살아주는, 잘 적응해주는 식물들이었다.
같은 식물이라 할지라도 우리 집에서는 잘 자라지만 다른 집에서는 못 자라기도 하고, 초보자가 키우기에 알맞다는 식물도 나에겐 어렵기도 했다.
지금은 식물을 새로 사는 횟수는 현저히 줄어들었고 기존에 함께 살고 있는 식물들을 가지치기할 때, 잘린 것으로 삽목 하고 물꽂이 하는 것에 더 흥미를 붙였다.
함께 한 시간도 짧지 않고, 이미 우리 집 환경에 적응도 했으며 모든 계절을 겪으면서 죽을 고비도(?) 넘기면서 튼튼해졌기 때문인지 쉽게 뿌리를 내주기에 더 마음이 애틋해진다.
거기다 가지를 쳐낸 기존의 오래 함께한 식물은 그 끝에서 다시 두 갈래로 갈라져 새로운 줄기와 잎을 내어 주는데 그 과정을 통해서 가지가 풍성해지며 점점 더 어여뻐진다.
이렇듯 화분 속 작은 세상에서도 최선을 다해 자라나고 사라지는 식물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면 그 속에서 치열한 생명 같은 게 보이기도 하고 자연의 축소판 같은 게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확실히 화분을 가까이하기 전보다 지금의 삶이 더 풍부하게 느껴진다. 화분 속의 식물이 아니더라도 언제나 주변에 식물이 있었지만 그다지 내 삶과 관계가 없다 여겼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자세히 보아야 그것이 아름다운 줄 알게 되는 것을 화분 속 식물들을 통해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