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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윤 Aug 29. 2023

아이러니한 직업

항공기 승무원의 엄마 일기



비행이란 게 참 아이러니한 직업이다.


싫으면서도 좋고, 좋으면서도 싫은 변태 같은 마음이다.

아이를 품고 낳으면서도 이제 내려야겠다.라는 생각이 굴뚝같다가도 반복되는 일상과 집안에 갇혀있는 하루들이 반복되면서 하늘이 너무 그리웠다.


이쯤 되면 지난 내 글을 보면서 '그냥 비행을 내리면 되지 왜 이렇게 우는 소리를 하지?'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 개인으로 봤을 때는,


나는 비행을 사랑한다.

하늘 위에 있는 여러 가지 모양의 구름들도 좋아하고 그 구름 속을 지나가고 있는 다양한 목적지를 가진 비행기들도 좋아하고, 또 그 구름 위를 걷고 있는 나의 동료들도 좋아한다.


기내 안에서 느낄 수 있는 그 특유의 경쾌한 승객들의 에너지와 쿵짝이 척척 맞는 동료들과의 비행도 너무 좋아한다.


만약 내가 아이가 아직 없었더라면 이런 글도 써 내려가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비행기 엄마의 일기가 아닌 , 비행기 승무원의 비행 일지를 쓰고 있었을 것이다.


어찌 됐건 남들과는 다르게 한 달에 여러 번은 동남아의 푸릇한 곳에서 잠시 쉬어갈 수도 있으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그 속에서 느끼는 가지각색의 에너지도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하다.


또한 나의 작은 도움이 승객들에게 마음이 닿는 그 순간도 좋아한다.


생각보다 비행기 안에서는 여러 가지 일들이 다양하게 일어난다.

환자 승객, 주취자 승객, 폭행 사고 같은 부정적인 일들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며 반면 신기하고 재밌는 일들도 많이 겪을 수 있다.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현장감을 좋아하는 것 같다.


승무원들은 현장에서 일하던 가닥이 있어서 늘 부단히 몸을 움직여야 하고 에너지를 발산하고자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비행기 엄마들이 비행을 놓지 못하는 부분도 이 때문이다.


역마살이 제대로 껴버린 엄마 때문에 함께하고 싶어도 함께할 수 없는 내 아이에게 미안하지만 나는 나의 비행을 사랑한다.

이런 양립적인 마음이 늘 출퇴근할 때마다 날 짓누르곤 하지만 항공기에 탑승하자마자 손 발부터 척척 나가는 나는 천상 승무원인가 보다.


정말 참 아이러니한 직업이다.




많은 비행기 엄마들이 공감할 현실적인 이야기이다.


물론 비행을 사랑하는 마음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1N년차 비행기 엄마들은 비행 말고 다른 것을 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내 찬란한 청춘과 함께한 비행을 내려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매 비행마다 동료들이랑 삼삼오오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지만 답이 안 나온다.

온전히 다른 직업을 위해 공부를 하기에는 아이도 돌봐야 하고 쉬이 도전할 용기가 나질 않는다.

안타깝게도 내가 가진 이 직업은 지난 내 커리어를 인정받을 수 있는 곳이 별로 없다. 인정받아봐야 다른 항공사로 이직하는 것뿐이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지금 현 우물에서 그냥저냥 비행하는 게 낫다고 생각이 든다.

그래서 비행기의 날개 끝자락을 붙잡고 무기력하게 펄럭펄럭 거리며 비행하고 있는 날들도 종종 있다. 유독 아이가 눈에 더 밟히는 그런 날, 혹은 아이가 아파서 엄마를 애타게 찾아 헤매는 그런 날들이면 사랑하는 비행이고 뭐고 고 다 집어 치고 내려오고 싶은 날들도 많을 것이다.

허나 현실적으로 당장 다가오는 카드값이라던가 이것저것 해주고 싶은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면 또 강단 있게 관둘 수도 없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비행기 엄마의 하루, 한 달이 이렇게 저물어 간다.

우리는 언제쯤 비행기에서 완전히 랜딩 할 수 있을까. 끝도 없이 어프로칭만 하고 있는 것 같다.



*랜딩(LANDING): 착륙

*어프로칭(APPROACHING): 착륙하기 직전의 항공기의 하강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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