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 윤 Jul 25. 2023

분리불안

항공기 승무원의 엄마 일기  




모든 비행기 엄마들의 숙명적인 그 단어 분리불안




내 아이는 꼭 새벽 3시에서 5시 사이에는 화들짝 놀라며 깨서 엄마를 꼭 찾는다.

내 옆에 있는지 없는지 어둠 속에서 더듬더듬 거리며 내 살결을 찾아 헤맨다.


내가 없는 어느 날들은 엄마 찾아 삼만리 세상 떠나가라 울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금세 픽 식어 다시 잠자리에 들기도 하는 아이의 새벽녘이다.

참 안되고 미안한 마음이다.


출근 준비를 하고 정갈한 머리와 단정한 유니폼을 입고 아이 앞에 서면 , 단번에 "엄마 벗어"라고 표현한다.

한 줌도 안 되는 두 손으로 있는 힘껏 하찮게 내 스카프를 풀어헤쳐버리고 애꿎은 캐리어를 쿵쾅거리며 밀어버린다. 

양껏 부풀어서 씩씩 거리며 울고 있는 아이를 뒤로 하고 캐리어를 질질 끌고 나온다. 

아이를 뒤로하고 와버린 내 마음도 질질 끌려 한국에 있는 것도 아닌 타국에 있는 것도 아닌 그 어딘가에서 둥둥 떠다니고 있다. 


필히 이런 광경은 비행기 엄마뿐만 아니라 일반직 워킹맘들의 마음과 아이들의 고충도 똑같을 것이다. 

새벽같이 살금살금 일어나 아이 몰래 부단히 출근 준비를 하고 눈 맞춤도 못하고 신발 소리도 못 내고 도둑같이 나와야 하는 엄마들의 굽은 등들도 나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인천대교를 가르 지르는 리무진 안에서 또 한 번 생각한다. 


' 도대체 언제까지 비행을 해야 하는 것일까 ' , ' 이게 맞는 일인가 ' 

여전히 엉켜있는 마음을 가지고 항공기에 탑승한다. 한바탕 기내 서비스가 끝나고 여유로운 표정을 가지고 근무하시는 선배님께 육아 고충을 토로한다. 


이 험한 길을 먼저 지나가신 육아 선배님들의 조언은 '존버'이다. 


조금만 버티면 아이들의 인생에서 조금씩 'FADE OUT' 되는 순간이 아주 곧 올 것이라고, 멀리도 아니고 5살만 돼도 아이만의 인생이 시작된다고, 아직 너의 비행을 놓지말라고 내 흔들리는 동공을 바라보며 진심으로 두 손을 잡아주신다. 


그러면서 스스로 합리화를 한다. 

' 그래. 나를 위한 게 너를 위한 것이고, 이번 스케줄만 지나면 이틀 쉬니까 조금만 힘내자. 나도 너도 ' 


이렇게 마음 아픈 스케줄을 몇 번 지내고 나면 한 달은 금방 간다. 


또 어떤 날은 미안한 마음이 왈칵 쏟아져 나와 호텔 방 침대 한편에서 흐르는 마음을 추스르고 있었다. 

그때 남편에게 온 음성 메시지 하나. 


이제 막 말을 시작한 아이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엄마 -. 엄마 -? . 빠리와 - . 빠-리-와- . 보고시퍼 - . 엄마.- 나 - 괜탸나- . 사랑 - '


맑고 투명하고 , 천사의 목소리가 있다면 이런 모습의 목소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예쁘고 아름다운 내 아이의 목소리.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본인 하루에 충실하게 집중하며 잘 자라고 있다. 


오히려 분리불안은 나였다. 


나 없이 밥은 잘 먹는지, 잠은 잘 자는지 , 마음은 괜찮은지 , 쉴 틈도 없이 속으로 아이에게 돌아오지 않는 질문을 건네가며 구태여 내 마음을 흙탕물로 섞어내고 있었다. 



물론 24시간 아이와 함께하며 옆에 있어주는 환경이 아이에게 가장 최상의 환경이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우리가 부족한 엄마들이 아니다. 

각자의 상황에서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하고 서로 사랑하며 또 서로가 위치한 상황을 헤아리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는 점. 

나뿐만 아니라 아이 역시 나의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늘 노력하고 있다는 점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정말 더 훨씬 대단하고 감사한 존재이다. 

그리고 우리 엄마들 역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 더 잘해내고 잘 견뎌내고 있다는 것 .






이전 02화 눈물 버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