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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윤 Jul 25. 2023

우리 엄마는 비행기

항공기 승무원의 엄마 일기 




'우리 엄마는 비행기' 






나는 햇수로 10년 차, 내년이면 곧 11년 차 비행기를 타고 있는 항공 승무원이다. 

처음 입사했을 때는 한 1~2년만 비행하다가 내려와야지 하는 생각이었는데 그 어리숙한 사회 초년생이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긴 지금에도 열심히 하늘 위를 걷고 있다. 

분명 아이가 생기고 태어나면 곧장 뒤도 안 돌아보고 그만둘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내가 하늘이랑 정이 많이 들었나 보다.

쉽게 그만둘 수가 없는 지경이다.

어떻게 시간과 상황에 떠밀려 복직을 하긴 했다만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 수천번 고민을 하는 나다. 

스케쥴러들의 고충이다. 

오늘 나갔다가 내일모레 혹은 3일 뒤에 돌아올 수 있으며 그 잠깐의 3일 동안 아이는 나도 모르게 훌쩍 커져있다. 

아이가 한 뼘 한 뼘 자라고 있는 모습을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없단 사실에 서운하고 서럽다. 


아이가 알아듣던 못 알아듣던 비행기 낱말 카드를 보여주며 열심히 설명하고 또 설명하던 어느 날 

하늘 위를 지나가고 있는 비행기를 쳐다보며 옹알거리며 나와 비행기를 번갈아 쳐다보기 시작했다. 


맞아 너의 엄마는 비행기를 타는 사람이야. 


회사 동료 육아선배들의 말에 의하면 “ 우리 딸은 어린이집에서 나를 비행기라고 자랑한대” “우리 엄마는 비행기야 너네 엄마는 뭐야?”라는 키즈노트를 보면서 아이들의 사회생활에서 나도 한몫하고 있구나 하는 마음에 우쭐거리곤 했다곤 한다. 

우리 아이도 곧 말문이 터지면 엄마는 비행기라며 낱말카드를 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재잘거리겠지 하는 생각에 픽 하고 웃음을 터트리곤 한다. 


우리 항공사의 항공기 좌석수는 189석. 국내선 기준 평균적으로 하루에 각각의 도시를 4번을 왕복한다. 

다양한 승객들을 만나고 또 다양한 아이들을 만난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부모님을 모시고 가는 자녀들, 또 그 자녀들의 아이들. 


무슨 이유인지 새빨갛도록 울어재끼는 신생아를 욱여넣고 태워 가는 젊은 부부. 


여행으로 비행기에 탑승하는 손님들이 대부분이지만 그 외의 이유들로도 탑승하는 손님들도 참 많다. 

하루는 태어난 지 40일도 안된 신생아가 탑승한 적이 있다. 

아직 벗겨지지도 않은 태지를 잔뜩 두르고 엄마품에 포옥 매달려 대롱대롱 발가락을 꼬물거리는 형태가 너무나도 귀여워서 어떻게든 말 걸고 싶어서 근처에서 얼쩡대고 있었다. 

모든 항공사 공통적으로 24개월 미만인 아이와 보호자에게 꼭 전달해줘야 하는 안내사항들이 있어 정보를 제공해 드렸고 나의 목적 (신생아 깽바리와 인사)을 이루기 위해 조금 더 말을 건네었다. 


그러던 중 갑작스레 코끝이 빨개지시며 눈가에 눈물이 왈칵 고인 아기엄마. 

사실은 아기가 아파서 제주에서 육지로 넘어가는 거라며 제주에서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육지 병원 찾아서 이 꼭두새벽부터 아이를 주렁주렁 매달고 가는 날이라며 울먹이며 더듬더듬 말을 건네셨다. 

원래는 승객과의 접촉은 최대한 삼가도록 되어있는데 나도 모르게 같은 엄마 마음에 덥석 아이 엄마의 손을 잡고 어떤 위로를 건네야 할지도 모르게 아이는 다 나을 거고 오늘을 추억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정말 진심으로 마음 다해 말을 건넸다. 


내가 저 엄마의 하루였으면 어땠을까 너무 힘든 하루였을 것 같다. 

내 손바닥보다도 한참 작은 아이의 발을 소중하게 감싸 쥐고 어쩔 수 없이 육지로 떠밀려 날아가야 하는 엄마의 마음을 내가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지금도 그 아기 엄마의 눈물 맺힌 눈과 식은땀에 머리카락이 엉켜있는 이마가 생각이 난다. 

어리고 약하고 보호받아야 할 모든 것들이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한다. 


이렇게 항공기는 대부분의 에너지가 설레고 들뜬 공기이지만 이렇게 안쓰럽고 무거운 공기들도 더러 있다. 

나의 한마디가, 나의 배려 한 소금이 그들의 공기를 조금이나마 가볍게 만들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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