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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윤 Sep 12. 2023

신기루

항공기 승무원의 엄마일기



'신기루 : 홀연히 나타나 짧은 시간 동안 유지되다가 사라지는 아름답고 환상적인 일이나 현상 따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정말 신기루 같은 나날이다.


아이를 품고 낳은 지 겨우 2년밖에 안 됐지만 벌써 2년이나 됐다.


분유냄새 폴폴 나는 신생아 시절에 혼자 트림도 못하는 아기를 사람 만들어 내겠다고 밤낮없이 새벽동안 보초를 섰던 그날들이 ,


집안 구석구석 빠질 것 없이 전부 다 참견해야 하듯이 뽈뽈뽈뽈 기어 다녔던 그날들이 ,


첫걸음마를 내딛고 그 하찮고 작은 걸음으로 세상을 탐색하려던 그 뒷모습을 보고 있었던 그날들이 ,


새삼스레 낯설고 신기하다.

언제 이렇게 커버렸지?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내 품에서 젖병 물고 꼬물대고 있었던 것 같은데,

오동통했던 허벅지는 어느새 날렵한 어린이가 되어버렸고 내 검지 손가락만 했던 그 작은 손은 어느새 내 손깍지를 낄 수 있을 만큼 많이도 자랐다.


신기루 같다.


특히나 나는 3일 - 혹은 길면 5일 동안 아이를 못 보게 되는 스케줄도 있기에 다시 돌아와 아이를 마주할 때에는 서운할 만큼 너무 금방 큰다.


비단 신체적인 성장뿐만이 아니다.


눈빛의 매무새도 하루하루 다르게 다듬어져가고 있고 주위를 살피는 마음도, 그리고 본인의 마음을 표현하는 스킬도 하루가 다르게 자라 가고 있다.

이러다가는 정말 금방 방문 쾅 닫고 들어가 버리는 그날이 금방 올 것만 같아서 서운하다.


신기루 같던 나와 아이의 날들을 다시금 기억하자면 ,


지금 와서 기억나는 단편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다 따뜻하고 반짝이고

아기를 키우면서 힘들었던 그 밤들, 혹은 따라주지 않는 체력들 , 입술이 전부 다 부르트고 손목 발목이 시큰거려 제대로 걷지도 못해서 눈물 훌쩍이던 것들은 기억도 잘 안 난다.


남편이랑 나랑 자주 하는 말 중에 하나 : 우리는 지금 오늘의 수호를 얼마나 그리워하게 될까 , 이렇게 우리만 바라봐주고 자기 마음 다해 우리를 사랑해 주는 이 순간을 얼마나, 정말 얼마나 그리워하게 될까


아이의 오늘을 , 그리고 아이와 나의 오늘을 있는 힘껏 사랑해 주고 집중하고 기억해 줘야겠다.


오늘의 너는, 오늘이 마지막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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