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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윤 Oct 19.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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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 승무원의 엄마일기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참 따뜻하고 의지가 많이 되는 것 같다. 


사실 나는 지난 세월 동안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물론 형제가 많았던 탓에 내 방도, 내 공간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냥 단순하게 마음을 온전히 집 안에 내려둘 수 없었다.


서툴지만 천천히 나의 방식, 우리의 방식으로 집을 만들어 왔었고, 또 앞으로도 따뜻한 온기를 더 얹어서 나의 꽃밭을 일구어 나갈 것이다. 


특히나 새벽 비행을 할 때는 더더욱 집이 생각난다. 

이제 막 구워낸 햇감자 같은 아기가 조그맣고 따끈한 숨을 쌔근쌔근 내쉬는 그 공간이 너무나 간절하다. 

건조한 기내 때문에 뻑뻑해서 제대로 감기지도 않는 눈꺼풀에 어딘가 항상 먹먹한 귀라던가 퉁퉁 부은 발을 퉁퉁 거리며 끌고 내려도 현관문에 들어서는 그 순간을 상상하며 오늘도 버틴다. 


따뜻하고 말랑한 아이의 품으로, 다정하고 기댈 수 있는 남편의 품으로 , 

집으로 가고 싶다. 




새벽 비행 때는 대부분의 승객들은 다 주무신다. 

대게 아이를 동반한 부모님들은 널브러져서 그나마 편하게 누워서 가는 자녀들 바깥으로 찌부러져서 새우잠을 청하신다. 

나 같아도 당연히 아이 먼저 내어주겠지만, 푸석거리는 얼굴과 피곤에 가득 찬 부모님들을 보고 있으면 너무나 같은 마음에 나 역시 뭐라도 내어드리고 싶다. 


보통 여행을 끝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아이들이 컨디션이 안 좋다. 

어찌나 신나게 놀았던지 까맣게 그을린 얼굴들 위로 여행의 피로와 여독이 잔뜩 묻어있어 만만한 부모님들에게 잔뜩 짜증을 풀어낸다. 


어떻게든 받아주려 노력하지만, 부모님들도 사람이기에 켜켜이 쌓인 여독들에 치여 많이들 언짢으시다. 

아이를 낳기 이전에는 '왜 이렇게 짜증이실까' , '왜 이렇게 예민하실까' 였던 의문들이 내가 직접 부모가 되어보니 너무나도 이해가 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체력의 200% 그 이상을 쥐어짜야 할 수 있는 게 아이들과의 여행이다. 


왜 이렇게 고생하며 굳이 여행을 가시는 거지? 싶었던 적도 있다. 

물론 아이들과의 추억을 위해 호기롭게 여행을 준비했겠지만, 또한 부모님의 여행이기도 하다. 

일상적이고 단조로운 집구석에서 벗어나 조금이라도 기분전환하고 싶은 우리 부모들의 귀엽고 호기로운 마음


호기롭고 기꺼이 고생을 자처하는 부모님들의 여행을 마음 다해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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