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 윤 Oct 14. 2023

나의 자매들(1)

항공기 승무원의 엄마일기 


이전에 기재했다시피, 나는 1남 3녀의 차녀이다. 

그 옛날 어르신들이 흔히 그랬듯 우리 아빠 엄마는 결국 아들 보기에 성공하였다. 

연년생인 내 셋째 여동생은 그런 사실에 불만이 매우 컸다. 

본인은 남동생을 낳기 위한 거쳐가는 돌다리라 생각하는 듯하다.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것을 양보하고 많은 것을 뺏기며 살아왔기 때문에 적대심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환경 속에서 자라온 까닭에 내 여동생은 똑 부러지고 생활력이 강하다. 


옛말에 셋째 딸은 얼굴도 안 보고 데려간다는 말이 있다던데 , 다른 셋째 딸들도 옛날부터 그렇게 커왔나 보다. 


내 동생은 정말 누구한테 시집보내도 아까울 정도로 참 다부지고 사려 깊고 다정하다. 


사실 여동생이랑은 가깝게 지낸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내가 사춘기 때는 동생이 너무 어렸고, 동생이 사춘기였을 때는 나는 이제 막 성인이 돼서 고주망태 대학생이었다.  또 동생이 성인이 되었을 때는 한창 비행하느라 바빠서 서로의 얼굴을 들여다보기도 쉽지 않았다. 


내가 결혼을 하고, 가족에 대해 다시금 생각이 들 때 그때 우리는 가까워졌다. 


어느 날 동생이 그런 일화를 말했다. 


내가 중학생이고 동생은 나보다 더 어렸던 잼민이 깽바리 시절 때, 우리는 2층침대를 같이 썼나 보다. 

동생은 1층, 나는 2층에서 자려고 하던 찰나에 동생이 무섭다고 나보고 같이 자자고 했었는데 이제 막 사춘기가 온 싸가지 바가지 어린 나는 싫다고 말했었다고 했다. 

잼민이 내 동생은 그럼 손이라도 잡아달라고 했더니 , 2층에서 무심하게 손을 툭 건네고 '무서우면 내 손 잡고 자 '라고 했더란다. 


당연히 손을 잡고 잘 수 없었겠지만 그때 위에서 건네진 내 손이 그렇게 감동적이었다고 했다. 


나는 전혀 기억도 안 나던 그날 밤의 일화 

이렇게 잊힐 만한 시간의 조각들이 한 개 두 개 모여 유년시절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하다. 



나의 자매들을 생각하면 내 아이에게도 필히 형제를 만들어주고 싶다.

다시 한번 아이를 품고 낳고 폭풍우 속을 걷는 그 과정을 다시 겪더라도, 아이에게 가장 가까운 친구와 유년시절을 함께 나눌 수 있는 형제를 만들어 줄 수 있다면 기꺼이 희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아빠 엄마에게 참 감사하다. 

지난 과거를 함께 나눴고, 현재를 나누고 있고 다가올 앞날을 또 같이 나눌 수 있는 내 평생의 사람들을 내 곁에 내어주셔서 , 진심으로 감사하다. 




이전 07화  초라한 하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