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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덱시 Jun 19. 2020

서른한 살 동갑내기 부부가 바라는 미래



  유튜브에 우리집 인테리어 소개 영상(일명 랜선집들이)을 올려 보려고, 야심 차게 카메라와 아이폰을 들고 다니며 15평 정도 되는 좁은 집의 구석구석 촬영을 막 끝낸 참이었다. 오전 10시 반쯤 되었을까. 연이가 전화를 해서는 축 처진 목소리로 다짜고짜 미안하다고 했다. 얘는 대체 뭐가 미안하다는 걸까, 갑자기 서울 본사로 발령이라도 났나? 이유부터 말하고 미안하다고 하지. 궁금증을 유발하여 그 짧은 순간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도록 만드는 것은 그가 즐겨 쓰는 이상한 화법이었다. 정작 그는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자초지종은 이랬다. 연이가 5월 7일부터 8일까지 이틀간 서울 본사 출장이 잡혀 나와 함께 이태원에 위치한 호텔에 머물렀는데(연이의 회사는 이태원과 가까운 신용산역에 있다), 5월 초 연휴 기간 동안 이태원의 클럽을 방문한 사람들 가운데 코로나 확진자가 나와버린 것이다. 5월 6일까지 이태원의 다중이용시설을 방문한 사람들은 코로나 진단 검사를 받고 자가격리하라는 것이 정부의 지침이었기 때문에 연이와 나는 날짜가 조금만 겹쳤어도 큰일 날 뻔했다며 그래도 조심하자고 얘기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연이 회사의 상황실에서 내놓은 기준은 한층 더 엄격했다. 연이가 2주간 재택근무 대상자에 포함되어 버린 것. 나는 이태원의 몇몇 자그마한 가게들을 돌아다녔지만, 정작 연이는 회식 후 느지막이 들어와 잠자고 출근한 것밖에 없는데.


  그래서 출근한 지 2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집으로 돌아오는 중이라고 전화를 건 것이었다.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한 이유인즉슨, 내가 퇴사 후에도 게을러지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시간을 정해서 글도 쓰고 공부도 하고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려고 노력 중인데 자기 때문에 망치게 되면 어쩌냐는 것이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해서 미안하다고. 처음에 이 소식을 전화 너머로 들었을 때는 진짜로 좀 그랬다. 연이가 집에 있으면 나도 덩달아 놀고 싶어져서 아무것도 못하면 어떡하지. 놀고 싶었는데 이참에 그냥 같이 놀아버릴까. 아니야, 그래도 마음 단단히 먹고 잘 하자.


  그런데 웬걸. 노래를 틀어두고 널찍한 거실 테이블에 마주 앉아서 연이는 회사일을 하고 나는 아이패드로 글을 쓰는데 생각보다 집중이 너무 잘 되었다. 장소만 집일 뿐 연이는 노트북으로 화상회의도 해 가며 별 무리 없이 회사일을 처리했고, 도중에 몇 통의 전화가 오갔다. 나는 맞은편에 잠자코 앉아 한 편의 글을 뚝딱 완성했다. 중간중간 부엌으로 가 차도 끓여 마시고, 점심 때 먹을 밥도 밥솥에 올렸다. 회사 점심시간에 맞추어 둘이 같이 재빠르게 밥을 차려 먹고는, 편의점으로 걸어 가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입에 물고 온몸으로 햇살을 받으며 돌아왔다. 각자의 할 일을 하다가 지겨워지면 가끔 뽀뽀도 하고 서로 잠깐 안아 주기도 하면서 오후를 보냈다.


  저녁 6시에 하던 일을 모두 접고 밖으로 나와 나란히 달리기를 하면서 연이에게 약간 숨이 차오른 목소리로 말했다.

  “아, 이게 우리의 미래 모습이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의 오른쪽으로는 해가 천천히 지고 있었고, 그림자는 왼쪽으로 길었다.






  내가 그리는 우리의 10년 후 모습. 어딘가에 속하지 않고 스스로의 일을 하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싫은 사람과 싫은 일은 되도록 멀리할 수 있는 삶. 타인이, 사회가 정해 놓은 기준에 휘둘리거나 남과 비교하지 않고,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는 단단하고 소박한 기준을 몇 가지 지니고 있는 삶. 생각 있는 소비를 하고, 지구와 동물을 생각하는 삶. 좋아하는 몇 가지에 대해서는 깊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것.


  단 하루였지만, 그 날 나는 내가 그리는 우리의 10년 후 모습 중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의 모습은 본 것 같다. 하루 종일 연이와 함께였고, 둘이서 손잡고 아이스크림 하나만 사 먹으러 가도, 내 살갗에 느껴지는 햇살과 바람만으로도 하루가 충만했다. 그 사실은 내 가슴을 무척 벅차오르게 했다. 달리기를 할 때 내 얼굴을 스쳐 지나가는 쌀쌀한 초여름 저녁 공기만큼이나.


  우리가 간절히도 원하는 그런 삶에 가까워지기 위해 내가 먼저 스타트를 끊었다. 내 삶에서 회사를 빼내어 버리기로 한 것.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싫어하는 것들,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을 하나씩 지워나가면 되니까. 나야, 나를 먹여 살려줄 연이가 있으니까 생계 걱정은 덜었다만 당분간은 남편 등골 빼먹고 사는 팔자 편한 아내가 될 것 같아 이 사실이 나를 적잖이 괴롭힌다. 어쩌다 알코올이 조금 들어가 나도 모르게 진심이 튀어나오면 연이는, 자기가 지금 나에게 해 주고 있는 것들을 나중에 자기에게 똑같이 해 주면 된다고 부담을 주지만 차라리 그렇게 말해주는 그가 좋다.


  그리고 나 역시 때가 되면 기꺼이 그 부담을 안을 준비가 되어있다. 그때까진 조금만 버텨주어요, 나의 사랑.



덧. 회사에서 남편은 감염 위험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재택근무 대상자에서 이틀 만에 제외했어요. 연이의 행복한 재택근무는 그렇게 2일 천하로 끝났다고 합니다. 물론 그는 무척이나 슬퍼했지요.





인스타그램 @dexy.k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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