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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덱시 Jun 16. 2020

공무원 시험공부는 나에게 깡을 주었다

그 깡 말고




  공무원을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 중 하나는 ‘시험공부한 거 아깝지 않아요?’였다.

  나의 대답은 ‘전혀!’



  이 글에서 내가 얼마나 큰 걸 포기하면서까지 공무원이라는 신분을 버렸는지, 나 이만큼 대단한 걸 버리면서까지 무모하게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티 내며 퇴사 경쟁 대열에 합류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퇴사 콘텐츠가 넘쳐나고, 퇴사를 하기 위해 누가누가 많은 것을 포기했는지도 스펙이 되는 것 같은 요즘 같은 때.


  사실 퇴사 이야기를 쓰기 전에 망설이지 않았던 건 아니다. 결국은 내 자랑이 되는 게 아닐까 두렵기도 했고. 퇴사가 마치 트렌드처럼 번지다 보니 어떤 식으로 풀어내야 할지도 고민이었다. 퇴사 후 세계여행을 떠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질릴 때까지 놀만한 화끈한 성격도 되지 않는 데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가 심했던 시기라서 퇴사 후 내 생활 반경은 안타깝게도 집 주변 1km 이내였다. 무엇 하나 특별할 것 없는 퇴사 후 일상이었기 때문에 나에겐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냥 내 생각과 감정을 써내려 가는 것 밖에는. 실로 다양한 감정이 드는 시기니까, 기록으로 남겨두어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이야기가 좀 옆으로 샜는데,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공무원 시험공부가 큰 포기가 아니었다는 거다. 슬프게도 나는 한국의 주입식 교육과 객관식 시험에 특화되어 있는 전형적인 한국 사람이며, 처음부터 끝까지 무조건 암기뿐인 공무원 시험에 아주 잘 맞았다. (이건 절대 자랑이 아니다.. 나는 차라리 시험 같은 거 못 봐도 좋으니 내가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또 막 한 번 보고 다 외우는 천재는 아니라 열심히는 해야 했기에 미친 사람처럼 독하게 했다.


  내 수험기간은 26살에서 27살, 1년 중 가장 뜨거운 8월 초에 시작해서 가을 기운이 조금씩 느껴지는 8월 말까지. 꼬박 사계절을 7급 공무원 시험과목 7개와 씨름했는데 그때는 내가 늦어도 한참 늦었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생각을 한 26살의 나 자신이 귀여울 뿐이지만. 취업 준비를 1년간 했지만 최종 합격까지 간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고, 작은 회사의 인턴에 추가 합격으로 붙었지만 오리엔테이션을 가 보고는 여긴 아니다 싶었다(추가 합격이라 혼자 약간 삐졌던 것 같기도 하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데). 누군가는 놀다가 가도 한 번에 붙고, 누군가는 준비하고 가도 떨어지는 게 취업이라고 생각했다. 오로지 운빨이 전부인 (나의 입장에서는 그랬다) 취업 시장에는 신물이 났고..  긴 취업 준비 기간 동안 거절만 당하다 보니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상태에서, 나에게 남은 길은 공무원 시험공부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공무원 시험은 적어도 내가 노력한 만큼의 결과는 나오겠지 생각하며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공부를 시작했었다. 왜 꼭 어딘가 속해서 일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그 어린 나이에 취업준비, 공무원 시험공부 말고 다른 무언가를 시작했으면 뭐라도 되어있을 텐데. 그 당시를 떠올리면 항상 함께 드는 생각이다. 참 바보 같고 시야도 좁았구나... 하는 생각. 누군가 나에게 네가 진짜 좋아하는 다른 일을 해보라고 한 마디만 해 주었어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든다.


  아무튼 그때는 나라는 존재가 여름의 열기에 아이스크림이 녹아 없어지는 것처럼 한없이 쪼그라들던 시기라 공부라도 열심히 해야 했다. 반드시 1년 만에 붙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스스로 감옥을 만들어 기계처럼 살았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칼 같이 밤 12시에 잠들어 7시에 일어났고 8-12시까지 오전 공부, 1-6시까지 오후 공부, 밤 9시부터 12시까지 밤공부. 아침과 점심 식사 시간에는 틈틈이 영어 단어와 한자를 외웠다. 매일매일 적어도 10시간, 공부가 정말 잘 되는 날은 12시간까지 공부했다. 저녁 6시부터 9시까지가 유일하게 숨통이 트이는 시간이라 1년 동안 매일 1시간씩은 꼭 걷고 들어왔다. 그 시간이 하루 중 유일하게 몸을 움직이며 스트레스를 푸는 시간이었지만, 그마저도 체력을 유지해서 공부를 더 많이 하기 위해서였다. 덕분에 1년 동안 하루 종일 앉아 공부만 했는데도 불구하고 몸무게가 유지되긴 했지만. 일요일에는 연이가 매주 나를 만나러 대전(그 당시 공부하던 집)으로 내려와 주었고, 일주일을 버틸 수 있는 에너지를 충전했다.


  저게 다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사이좋게 한 번씩 지나는 동안  다른 모든 변수(친구와의 약속, 외식, 술 등등)를 전부 차단하고 위에 쓴 스케줄을 단 한 번도 벗어나지 않았다. 답답하고 불안했지만, 나처럼 하는 사람 아니면 누가 이 시험에 붙겠어, 하는 생각으로 1년간 버텼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내 예쁜 나이 26살, 27살한테 미안해서 ‘공무원 붙기만 해 봐라. 내가 65살까지 쪽쪽 빨아먹고, 평생 동안 연금 받겠어.’하고 이를 갈았는데.... 민망하게도 고작 3년 붙어있었네요.


  공무원 시험공부를 해 본 경험이 나에게 준 건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물론 합격. 두 번째는 나 이제 뭐든지 다 해낼 수 있겠다는 깡. 무언가에 미쳐서 1년이라는 시간을 조금도 허투루 보내지 않고 꽉꽉 눌러 담아 보내본 경험은 나 자신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을 주었다. 그때 형성된 자신감이 그 이후 인생을 살아가는 단단한 밑바탕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시험 준비를 했던 1년이 없었다면 공무원이 될 수도 없었겠지만 공무원을 그만둘 수도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공무원을 그만둘 때 수험생 신분으로 공부 외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도 닦는 기분으로 살았던 그 1년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오히려 그 시기는 욕 나올 정도로 힘들었던 만큼 앞으로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무슨 일을 하든 버팀목이 되어 줄 것이다. ‘그것도 버텨냈는데, 이거 하나 못하겠어!’, ‘나는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나 자신을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이야.’하는 당돌한 마음가짐을 가지게 해 준다고 해야 하나. 흔해 빠진 말이지만 버릴 경험은 없다. 공무원으로 평생 살 거 아니면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보이는 공무원 수험생 경험이 취업 준비로 바닥을 쳤던 내 자존감을 한 순간에 채워주었고, 그 이후 내 인생에도 이토록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인스타그램 @dexy.k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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