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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덱시 May 14. 2020

퇴사 기념 타투

Things I've Done After Quitting(TIDAQ)

#1. 타투




    얼마 전 두 번째 타투를 했다. 1년 전 쯤 받은 내 첫 번째 타투는 결혼반지 대신이었고, 이번은 퇴사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보통은 무언가를 기념하거나, 몸에 지니고 다니고 싶을 정도로 애틋한 사람 혹은 물건이 있을 때 타투를 한다. 아니면 단지 타투라는 행위를 함으로써 해방감을 느끼고 싶어서 하거나. 나는 둘 다였다. 우선 공무원 퇴직이라는 내 인생의 큰 사건을 어떤 식으로든 기념하고 싶었다. 동시에 미루고 미뤄 왔던 손가락 타투를 한들, 아무도 내 손가락을 보고 이래라저래라 할 만한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은밀한 기쁨을 느꼈다.


  회사를 그만 두고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었던 첫 날 저녁, 타투를 하러 갔다. (불과 일주일 밖에 되지 않은 일인데, 퇴사했다고 들떠서 총총거리며 타투샵을 찾았던 제 모습이 좀 철없는 아이 같기도 하고 부끄러워지네요 하하)


  세상의 따스함이란 따스함은 한 자락도 남김없이 말려버리는 듯한 차가운 사무실 형광등 빛 아래 앉아 있지 않아도 된다는 황홀한 기쁨, 앞으로 뭐 해먹고 살지 하는 걱정, 내일 퇴사 파티할 때 무슨 와인 마시면 좋으려나, 피노 누아를 마실까, 아니면 얼마전 연이가 선물로 준 내추럴 레드와인을 마실까. 라벨에 귀여운 양이 낚시를 하고 있는 일러스트가 있었는데. 등등.


  깜깜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당장의 행복한 감정이 한데 뒤엉켜 내가 지금 무슨 기분인지도 모르는 뒤죽박죽 상태였다. 나는 그런 상태로 1층에서 3층까지 온통 술집인 건물의 꼭대기 옥상에 있는 타투샵에 앉아 있었다. 아무도 옥상에 타투샵이 있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할 수 없을 듯한 그런 곳이었다. 차곡차곡 쌓아 올려진 술집 위의 아슬아슬한 타투샵이라니. 꼭 지금 내 기분 같군. 지금껏 (잘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어쨌든) 차곡차곡 성실하게 (세상이 바라는대로) 무언가를 쌓아 올려 왔는데, 그래서 최소한 흔들리지는 않는 건물을 짓고 있었는데, 지금까지의 규칙을 깨고 옥상에다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이상한 집을 짓기 시작한거다. (사실 겉으로만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였을뿐 속은 제정신 아닌 취객들로 가득한 술집처럼 혼돈 그 자체였다.)


  이런저런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갈 동안 차례를 기다려 타투를 받았다. 그래서 지금 내 몸에 타투가 새겨진 곳은 총 네 곳. 양쪽 손목과 오른쪽 손가락, 그리고 팔뚝.


1. 왼쪽 손목: 내가 남편을 부르는 애칭인 yeoni(연이)

2. 오른쪽 손목: 직접 그린 지구 모양(아무도 지구인지 모른다는게 문제)

3. 손가락: 자라 온라인 스토어 구경하다가 어떤 모델의 타투 문양이 너무 예뻐서 그 문양 그대로

4. 팔뚝: love and free 레터링


  전부 소심하게 작은 크기다. 손가락 타투는 크기만 작다 뿐이지 위치상 과감하다 여겨지긴 한다. 개중 과감했던 손가락 타투를 포함하여 지금까지 한 타투들은 다행히 없애버리고 싶다거나 후회를 한다거나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너무 마음에 들어서 자꾸 내 타투 잘 있나 확인하게 되는게 문제.


  (고작 2번이지만) 타투를 할 때마다 느끼는 건데 생각보다 진.짜. 아프다. 뭐 얼마나 아프겠어, 하는 생각으로 쉽게 생각했다가는 깜짝 놀랄거다. 진짜로. 으, 그 살을 파고 드는 듯한 찌릿찌릿한 아픔이라니. 살이 많이 없는 손목과 손가락 같은 부위보다는 그래도 살이 붙어있는 팔뚝이 좀 나으니 참고하세요. 뭐 여하튼, 공무원 퇴직 정도 되는 굵직한 사건이 없는 한 당분간은 타투 안하고 싶을 것 같다.


  그 다짐에 더해, 내가 지금껏 쌓아올려온 겉으로 보기에 번듯한 건물의 꼭대기에 이제 막 짓기 시작한- 이 정체 모를 집이 부디 바람에 날아가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비가 새도 괜찮고, 더워도 괜찮고, 추워도 괜찮고, 벌레가 우글거려도 괜찮으니, 천천히 완성되어도 좋으니, 그냥 그곳에 쭉 있어주면 좋겠다. 술집 위의 타투샵처럼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에 보이건 말건, 너무 위태롭고 허술해서 그들이 저건 아닌데 눈총을 보내더라도. 나만 그 집에서 기쁘면 그만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힘에 부치더라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나는 나의 옥탑방을 반드시 완성시키고야 말거다.










인스타그램 @dexy.k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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