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멀다고 장대 같은 비가 내리고, 이 비가 그치면 다시 무더위가 반복됩니다. ‘덥다, 꿉꿉하다!’란 말이 절로 나오는 장마철입니다. 비가 내리면 날씨는 선선해지지만, 창문을 타고 들어오는 습기를 머금은 축축한 바람은 금세 온 집안을 눅눅하고 끈적거리게 만들어버립니다. 그렇다고 문 닫고 에어컨을 켜기에는 전기세도 아깝고, 지구에게도 미안하죠. 참으로 지내기 어려운 것이 요즘 같은 장미철 여름입니다.
여러 날 계속해서 비가 오는 장마의 장자에 길 장자(長)를 쓸 것 같지만 그건 아니라고 하네요. 15세기 이후 문헌에는 ‘장마’를 의미하는 단어로 ‘한비, 오란비(久雨), 마ㅎ, 댱마ㅎ, 맛비, 댱마비’ 등이 등장하는데 이중 ‘한비’에는 ‘대우(大雨·큰비)’, ‘임우(霖雨·장마비)’의 의미가 들어 있다고 합니다. 점차 장마를 의미하는 이들 단어가 사라지고 ‘마ㅎ’ ‘댱마ㅎ’만 남았는데, ‘雨’와 ‘霖’의 의미를 지닌 ‘마ㅎ’도 사라지고 ‘댱마ㅎ’만 살아남았고, 이게 ‘댱마’ 그리고 ‘장마’로 변한 거라고 합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장마를 부르는 명칭은 예쁘게도 ‘매화비(梅雨·つゆ·쯔유)’라고 합니다. 매화가 피는 시기도 아닌데 웬 매화비냐고요? 일본에서 장마를 매화비라고 하는 것에는 여러 설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중국에서 유래했다는 설입니다. 중국의 양자강 유역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우기에 해당하는데, 바로 그 시기에 매화가 무르익는 시기라 ‘매화비(梅雨)’라 했다고 합니다. 이게 그대로 일본에 들어와 ‘매화비(梅雨·쯔유)’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밖에도 비가 많은 내리는 장마철에는 습도가 높아 곰팡이가 생기기 쉬워 곰팡이 ‘미(黴)’를 써서 쯔유(黴雨·미우)라고 했는데, 후일 쯔유(黴雨)와 발음이 같은 매화비, 즉 ‘쯔유(梅雨)’로 변했다는 설입니다. 결론적으로 잘 모른다는 거죠.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의문은 매화비(梅雨)를 ‘쓰바이우(ばいう)’가 아니라 ‘쯔유(梅雨)’라고 읽는가 하는 겁니다. 이것에 대해서도 여러 설이 있습니다. 많은 비로 초목에 방울방울 ‘이슬(つゆ)’이 맺혀서 이슬을 의미하는 쯔유가 되었다고도 하고, 매화가 익어가는 시기라서 쯔유라 했다는 설도 있지만, 이 또한 설에 불과합니다.
높은 온도에 종일 내리는 비는 습도를 높여 불쾌지수 역시 높아집니다. 빨래에서 온통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음식물도 금방 상해버려 장마가 빨리 끝났으면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자연생태계에 장마는 없어서는 안 될 ‘은혜로운 단비’입니다. 가끔 인간들에게 엄청난 재해를 주기도 하지만 이 시기에 내려주는 비는 벼와 야채, 과일의 성장을 돕습니다. 이제 겨우 꽃잎을 떨어트리고 초록으로 옷을 갈아입으려는 나무들에 신록을 싹 트이는 데 필요한 양분을 제공해주기도 합니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의 성장에너지, 장마 덕분에 우리는 가을날 자연이 내어주는 맛있는 햇곡식과 과일을 선물 받을 수 있습니다. 창밖에 내리는 비를 맛있게 받아먹는 식물들, 물고기들, 동물들을 상상하며 장마의 꿉꿉함을 날려 보냅시다. 한 달 전에 담가놓은 매실이 맛있게 익는 소리도 들리는 듯합니다.
빗소리를 들으며 시끄러운 락음악을 듣고 있노라니 좀 출출한데, 오늘 점심은 부침개어떠세요? 고소한 기름냄새가 방안에 퍼지는 것도 그닥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