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군인의 나약함은 가족의 수치
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이어 지난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습,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도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며칠 전 OTT에서 2011년부터 방영된 영국의 SF 장르 드라마 시리즈 ‘블랙 미러’ 중 ‘보이지 않는 사람들(Men Against Fire)’ 편을 시청했습니다. 이 회차는 사람들에게 나쁜 바이러스를 퍼트려 벌레로 변하게 하고 땅을 오염시키는 괴물 ‘벌레(Roach)’들을 소탕하는 작전을 수행하는 군인들의 이야기입니다. 코난제, 일명 ‘스트라이프’라고 불리는 주인공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전투 보조용 증강현실 시스템, 즉 ‘MASS 마스크 시스템’을 이식받은 군인입니다.
벌레를 처단하러 허폴스 마을로 출동한 ‘스트라이프’는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달려드는 벌레 무리를 발견하는데 벌레는 우리가 생각하는 벌레의 모습이 아닌 좀비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공포에 질린 ‘스트라이프’는 벌레 2마리를 사살하는 공을 세우지만, 벌레와 육탄전을 하다 입은 부상으로 꿈에서 환각을 보고 무기력증에 시달립니다. 사실 그건 ‘MASS 마스크 시스템’이 벌레의 해킹으로 해제당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음 전투에서 ‘스트라이프’는 벌레의 은신처에서 이번엔 벌레가 아닌 민간인을 발견하고 이들을 대피시키려 하지만 동료들은 이들이 벌레라며 쏴버리자 스트라이프는 총을 맞으면서까지 민간인 모자를 대피시킵니다. 은신처로 총상을 입은 ‘스트라이프’를 데려와 치료해준 민간인 모자는 ‘MASS 마스크 시스템’이 군인들의 일부 감각을 마비시키고 꿈속에서도 방아쇠를 당기도록 통제받고 민간인을 좀비로 보이게 한다는 걸 알려줍니다. 진실을 알게 된 ‘스트라이프’는 승승장구의 살인 병기, 군인의 길을 포기하고 민간인 살해로 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에 시달리는 삶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온 그의 눈에는 꿈속에서 자신을 반기던 여성은 사라지고 폐허가 돼버린 고향만이 들어옵니다.
이 드라마를 보며 태평양전쟁 당시 고문·살인·생체 실험도 마다하지 않고 잔혹한 살상을 자행한 일본군들은 어떻게 아무런 죄의식 없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며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2015년 중국 기록물보관소가 공개한 내용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참담했습니다.
알려진 바와 같이 베트남전 참전 미군이나 아프가니스탄 전쟁 참전 소련군은 물론 시위 진압에 차출된 경찰, 군인 등도 심한 PTSD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패전 후 일본인 포로들은 누구 하나 자신이 형법상 범죄를 저질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에게 흔히 나타난다는 PTSD 증세도 나타나지 않았고 악몽을 꾸는 일도 없었다고 합니다. 난징대학살에서 2만명의 중국인 포로를 학살한 후 자연풍경에 도취하는 일기를 남기기도 했다는데 이들은 왜 피해자들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했던 걸까요?
일본 정신과 의사 노다 마사아키(野田正彰)는 전쟁 중 잔학한 행동을 한 군의, 군인, 헌병 등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심리, 죄책감의 유무 등을 조사해 『전쟁과 죄책(戦争と罪責)』(1998)이라는 책을 발간했습니다. 전쟁에 출정하기 전에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데 무엇이 이들을 악마로 만들었을까요? 태평양전쟁에 군의관으로 참전했지만 전쟁에 침묵하며 그저 권위적인 아버지로 일생을 살다간 아버지에 대한 의문에서 이 조사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제 초로의 노인이 된 노다가 만난 전범들은 고문, 학살, 인체 해부 등의 사실을 인정합니다. 이들은 포로들에게 잔혹하게 행동하는 것이 용기이며 임무라고 배웠다고 회고합니다. 오노시다 다이조라는 군인은 매독을 치료하는 민간요법으로 중국 농민을 살해해 뇌를 먹었다고도 증언했습니다. 노다가 전범 고지마에게 “죽인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나요?”라고 묻자 그는 “아니요. 찌른 부분만 기억합니다”라고 답변합니다. 노다는 “그럼 당신은 그들을 물체로만 인식한 거군요”라고 말합니다.
무엇이 가해의 진실에 입을 다물게 하는 걸까요? 아니 가해자의 은폐, 무시, 망각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군의관으로 지원한 유아사 켄은 중국의 한 병원에서 생체실험에 참여했지만, 막연히 그들은 죽을죄를 지은 자들일 거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종전 후 포로수용소로 보내진 켄은 자신이 생체실험한 사람의 어머니로부터 아들이 산채로 생체해부 당했다는 이야기에 눈물로 눈이 짓무르고 아무것도 먹을 수도 없다는 편지를 받고서야 이들에게도 가족이 있었음을 깨닫고 자신의 전범 범죄를 참회한 책을 출판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참전하기 전에는 평범한 시민이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잔학한 행동을 하는 조건은 무엇일까요? 이들이 진정 천황을 신으로 믿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이들에게 나약함은 천황을 위한 성전을 파괴하는 용서받을 수 없는 반역행위로 인식됐다는 겁니다. 국가의 번영을 위해 약자나 소수자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는 과잉경쟁과 선망과 굴욕의 경계에서 공격성을 고조시키며, 조직의 힘으로 강요당한 복종으로 도피하면서 일본 사회가 이들의 감정을 마비시킵니다.
노다는 충분히 슬퍼할 수 있는 사람만이 충분히 기뻐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일본 사회는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을 고백할 기회조차 허락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타자의 슬픔을 느낄 줄 아는 감정을 회복할 수 있을까. 노다는 “나는 우선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자 하는 노력에서부터 시작된다⋯물어봐서 알아갈 때 우리는 다음 단계에 도달한다.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알아야만 죽어간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노다는 일본을 감정을 억눌러 ‘상처 입지 않는 정신’을 갖춰야 사회인으로 인정받는 ‘감정 마비’의 사회라고 봤습니다. 우리 사회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회 부적응, 힘들다고 말하는 것들에 대해 우리는 개인의 나약함에 기인한 거라고 자신을 탓하게 하고 있지 않은지, 나약함을 드러내는 것에 두려움을 갖게 하는 것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할 겁니다. “힘들다” “고통스럽다”고 말하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사회는 ‘죄의식 없는 악인’을 만들지 않고 ‘슬픔 느끼는 인간’을 성장하게 할 겁니다.
그 옛날 청일전쟁에 출정하는 남동생을 위해 시인 요사노 아키코(与謝野 晶子)는 ‘아아 남동생이여 너를 위해 운다. 너는 가서 죽어서 오지 마라. 막내로 태어난 너를 누구보다 사랑한 부모님이 진정 너에게 무기를 쥐여주고 사람을 죽이라 가르치지 않았다. 사람을 죽이고 자신도 죽으라고 24살이 된 너에게 가르치지 않았다.(ああ、弟よ、君を泣く、君死にたまふことなかれ、末に生れし君なれば、親のなさけはまさりしも、親は刄をにぎらせて人を殺せと教へしや、人を殺して死ねよとて廿四までを育てしや, 1904)’라는 시를 발표합니다.
이 시가 발표되자 아키코는 ‘전쟁을 비판하는 건 빨갱이’라는 이유로 곤욕을 치러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