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2월 2일이 되면 일본에서는 그해 가장 화제가 되었던 유행어나 신조어(新語·流行語 大賞)를 선정하여 수상하는 이벤트가 열립니다. 이 행사의 시행사는 ‘자유국민사(自由国民社)’라는 민간출판사이지만 ‘신조어·유행어 베스트텐’은 모든 언론사가 동시에 발표할 정도로 국민적 관심이 매우 높습니다.
올해 대상은 1985년 우승 이후 38년 만에 일본 프로야구(NPB) 센트럴리그 1위에 오른 한신 타이거스(阪神タイガ‽ス)의 오카다 아키노부(岡田彰布) 감독이 만든 슬로건 ‘아레(A.R.E)’가 선정되었습니다. 한신 타이거스의 우승은 창단 이후 올해가 두 번째로 그야말로 오사카 전체가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승리를 확정 지은 후 오카다 감독은 인터뷰에서 “어떻게든 달성할 수 있어서, 그거의 그거죠(アレのアレ, 아레노 아레)”라고 말했습니다.
도대체 ‘그거의 그거?’ 좀 어리둥절했습니다. 일본어의 ‘아레(アレ)’는 우리나라 말의 ‘그거’에 해당하는데 ‘그거의 그거’가 무슨 뜻이지? 라는 생각이 제 머릿속을 흔들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거(アレ, 아레)’는 승리라는 말 대신 사용하는 말로 그가 이 말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오릭스 감독(2010~2012년)으로 있던 13년 전이라고 합니다.
오카다 감독이 취임하기 전까지 오릭스(オリックス)는 20년 동안 단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하고 있었죠. 그런데 그가 감독으로 취임하고 1년, 오릭스는 교류전(交流戦)에서 승리를 거둡니다. 그런데도 선수들이 계속 불안해하자 우승이라고 말하지 않고 “그거(아레=우승)”라고 말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선수들의 부담을 덜기 위한 감독 나름의 자구책이었던 거죠.
1935년에 출범한 한신 타이거스는 요미우리에 이어 두 번째로 긴 역사와 전통을 보유하고 있는 야구구단이지만 만년 꼴찌입니다. 그런데 오카다가 한신 타이거스로 취임한 첫해에 일을 낸 겁니다. 한신 타이거스 팬들은 응원 수건을 흔들며 ‘그게 바로 그거(아레)야’ ‘그게 세이프야’ ‘그게 〇〇(そら〇〇)’라고 목이 터지라 응원하며 경기장을 후끈 달궜습니다.
드디어 59년 만에 간사이에서 펼쳐진 ‘2023 닛폰 시리즈 한신 vs 오릭스’. 1차전은 한신이 오릭스를 7-1로 이기고, 2차전은 오릭스가 8대 0으로 승리했습니다. 그리고 3차전에서 한신은 ‘낮게 치는’ 전략으로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벌인 홈 경기에서 4대3으로 이기며 80승 44패 4무를 기록하며 리그 1위를 결정짓습니다.
오사카 출신으로 선수 생활 대부분을 타이거즈(1980~1993)에서 보낸 오카다가 타이거즈의 지휘봉을 잡은 건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처음 감독으로 부임한 것은 2004년이었는데 성적 부진으로 2008년에 경질당합니다. 그리고 올해 두 번째로 타이거즈 감독으로 부임하였습니다. 취임하는 날 오카다 감독은 “오늘은 우승이라고 말하지만, 내일부터는 그거(아레)로 하자”라고 했답니다. ‘그거=우승(優勝)’을 향한 강한 의지를 표현한 겁니다. 이는 한신 모토인 ‘A.R.E’와 발음도 같았는데, 슬로건 ‘A.R.E’는 ‘개인, 팀으로서는 명확한 목표(Aim!)를 갖고, 야구와 선배들을 존경하는(Respect) 마음으로, 개개인이 기능을 향상(Empower!)하자’는 의미라고 합니다.
오카다는 부임 후 구단에게 ‘선수 평가를 할 때 볼넷과 안타를 같은 기여도로 인정해 달라’는 요청을 했다고 합니다. 이런 오카다 감독의 리더십 아래 한신은 오랜 염원이었던 우승컵을 손에 거머쥔 겁니다. 한신이 유일하게 재팬시리즈에서 우승했던 1985년 팀의 주장이었던 오카다가 38년 만에 돌아와 자신의 손으로 우승컵을 타이거즈에 다시 안겨준 2023년은 그에게 평생 잊지 못할 해가 될 것입니다.
한신 타이거스의 승리에 오사카 사람만이 아니라 전 일본이 지지를 보낸 것은 그야말로 누구나가 꿈꾸는 약자의 반란을 현실로 보여주면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의 선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올해의 유행어 대상에 ‘아레(A.R.E,アレ)’가 선정된 것에 저는 이견이 없습니다.
한 해가 끝나가는 지금, 우리의 최고 유행어는 뭘까요? 올해 유행어 중에는 ‘웃안웃’이라는 말도 있다더군요. ‘웃기는데 안 웃겨!’의 줄임말로 웃기지만 웃을 수 없는 상황이거나 웃기지만 슬픈 상황에서 쓰이는 말이라고 해요. 한마디로 웃픈 상황인 거죠.
내년에는 제발 이런 말 말고 우리의 가슴을 따뜨하게 가득 채워주는 말이 유행했으면 합니다. 누군가의 마음에 닿지 않고 땅에 떨어져 버리는 말들이 아닌 누군가의 가슴에 와 닿는 그러한 말이죠. 내가 닿기를 바라는 사람의 가슴에 닿지 않고 떨어져버리는 말들 만큼 슬픈 일은 없을테니까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