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영하로 떨어진 날씨 앞에, 밤새 내 몸의 온기로 따뜻해진 이불을 박차고 나오는 일이 너무 버겁게만 느껴진다. 두툼한 이불에 온수 매트까지 깔고 옆에서 자는 딸은 이불을 걷어차기 일쑤다.
딸과 나와의 본의 아닌 동거는 우리 집에 슈퍼킹사이즈의 침대가 들어오면서부터다. 수입가구? 오ㅡㅡ호....우리나라 침대와 달리 육중하고도 튼튼해 보이면서도 뭔가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것만 같은 사진 속 침대, 엄청 할인판매를 한다는 말에 실물은 보지 않고 덜컥 사버린 침대. 그런데 수입 가구의 킹사이즈는 우리네 킹사이즈가 아니었던 거다. 나의 허영심과 헛된 망상이 일을 낸거다.
세 사람이 자도 충분할 정도로 커다란 사이즈의 이 침대는 방안을 가득 채웠고, 이 모습에 망연자실해 하는 나에게 딸은 새 침대니까 여기서 자야한다며 안방으로 자기 이불을 들고 들어왔다. 그렇게 나와 딸의 동거는 시작됐고, 아이 아빠는 서재로 쫒겨나갔다.
딸은 자기 이불을 들고 들어와서 혼자 덮고 자니 나도 자연스럽게 내가 덮던 이불을 혼자 덮고 잔다. 그런데 이렇 게 자다 보니 편한 거다. 큰 이불을 누군가 나누어 쓰며 상당방의 눈치를 보며 이불을 덮을 때는 잘 몰랐던 편안함이 있다. 좀 덥다 싶으면 이불을 반만 덮어도 되고, 자다 추우면 머리끝까지 이불을 끌어올려도 전혀 눈치 볼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이부자리를 생각하다가 문득 일본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좀 의아하게 생각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부부인데 일본식 방(다다미방)에서 이불을 한 채가 아니라 각기 한 채씩 깔아놓는 게 못 내 이상했다. 시댁이나 처가를 방문할 때도 부모님들은 부부라도 이불을 두 채 깔아놓는다. 최대한 개인의 취향을 존중한다는 의미이다. 침대인 경우에도 더블 침대가 아니라 싱글 침대 두개를 나란히 놓은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한 일본어에는 '한 이불 덮고 자는 사이'라는 말은 없다. 우리나라는 금실이 좋은 부부도 그렇게 좋지 않아도 이불을 각기 깔아놓거나 싱글 침대 두 개를 놓는 모습은 보기 힘들다. 사이가 좋지 않거나 혹은 아이들 때문에 각방을 쓰는 경우가 있지만, 한 방에 자면서 굳이 이불을 따로 까는 모습은 우리에겐 그다지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모텔 온돌방은 스스로 이불을 펴니 논외이지만 우리도 고급 호텔 온돌방은 이불을 펴둬도 두 채를 깔지는 않는다. 투윈이면 큰 이불을 펴놓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일본의 온천, 여관은 사람 수만큼 이불을 깐다. 이런 습관은 근대 이후 만들어진 거로 알려져 있다. 이불은 서민들이 사기에는 너무 고가여서 사람 수 만큼 이불을 사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귀족이나 무사 계급과 같은 배층은 필요할 때는 주로 부인이 남편 방에서 동침하지만 원래 각방을 사용한다. 부인 방은 집안의 안쪽에 남편은 앞쪽에 둔다.
그럼 후처나 첩은 어떻게 하냐고? 일본은 본처는 후처나 첩과 같은 집에 살지 않는다. 남자가 여성에게 집과 하인들은 마련해 주고 매달 생활비를 주는데, 후처는 기생이나 노비가 아닌 무사나 귀족 여성들이다. 이 여성들은 남성보다 신분이 좀 낮거나 혹은 남성의 지위가 높아 여자 쪽 부모들이 그 지위를 이용하기 위해 후처로 보내는데, 정실과 비교해 그다지 사회적 차별은 많지 않다. 모두 부인으로는 인정받는다.
일본을 대표하는 헤이안 시대의 여류소설가 무라사키 시키부도 귀족 출신이지만, 자신보다 지위가 높은 아버지뻘 되는 후지와라 노부타카의 후처가 됐다. 친정의 뒷배가 없는 후처는 남편에게 버림받으면 그저 쓸쓸하게 삶을 마감해야 하는, 사랑만 먹고 사는 존재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무라사키 시키부도 노부타카의 구혼을 줄곧 거부하다가 마땅한 혼처가 없어 결국 후처가 된 거다. 그러니 홍길동처럼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지 못하거나, 서자라고 사회적으로 차별을 받지도 않으니 일본에서는 홍길동의 이야기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잠자리도 밥도 각기 따로따로. 좋은 건가 나쁜 건가. 혼자는 편하지만, 외롭고 엉켜 사는데 번거롭고, 그 적정선이 어렵다. 모두 각방을 쓰는 건, 어딘가 쓸쓸하지만 같은 침대라도 이불만큼은 따로 덮는 게 편하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