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이지 않아도괜찮아
사실은 죽기 전에 책을 한 권 내는 것이 소원이었다. 이 소원에 이렇게 빨리 다가가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왜냐하면 글을 쓰는 것은 대단한 사람들만 하는 것이라고 짐짓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니 막연히 오랜 세월을 살다 보면 죽기 전에는 그 대단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는지 몰랐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10 대 때는 대학만 가면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살아보니 어른은커녕 어른으로 커갈 수 있는 변변한 꿈 하나라도 있어봤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20 때 때는 그냥 나르시시즘으로 시간을 낭비했던 것 같다. 살아보니 이 시절이 가장 만족도가 높다. 유일하게 뭘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냥 그 시절에 취했다. 서투르면 서투른 대로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그래도 서른이면 원숙미가 생길 줄 알았다. 30살 때까지 공부를 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정말. 어찌어찌 졸업을 하고 그래도 40이면 그 흔한 불혹의 나이인데 더 이상 흔들리지는 않겠지 싶었다. 웬걸,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던걸? 서른 중반 즈음 마흔 중반의 언니가 그래도 마흔이 되면 포기가 되더라. 이 말 한마디만 진실이었다. 삼십 대까지 끈질기게 꿈틀 되던 욕망이라는 것이 마흔이 되면서 희한하게 포기가 되기 시작했다. 아마도 노안이 시작되면서 포기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 것 같다. 눈이 예전 같지 않음을 느끼면서 덜컥 내가 왜 이러지? 싶은 게 이게 시작이라는 싸한 느낌과 함께였다. 아직은 50을 살아보지 않았지만 뭐 지금껏 살아 본 봐로는 그냥 목에 주름만 조금 더 가 있을 뿐 지금과 별반 차이가 없으리라는 것쯤은 눈치채고 있다. 그렇다. 이런저런 시간을 겪어보면서 죽기 전이 그리 멀지 않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냥 무수히 죽어간 누구들처럼 책 하나 못 남기고 갈 것이라는 사실만 또렷해지고 있을 즈음이었다.
백수 아닌 백수로 시간을 죽이면서 산다는 건 사실은 살아있는 것이 아니 였다. 펄떡펄떡 뛰는 욕망은 아니지만 가끔 뜨거운 무언가가 가슴 위로 치솟을 때면 더더욱 잠정적 우울증이 도지기 시작했다.
그때 이 책을 만났다.
그전에 무수히도 소설을, 정확히는 돈을 잘 번다는 시나리오를 쓰고 싶어 끄적인 적이 있다. 그러나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인물관계도만 한 이틀쯤 고민하다가 접고 접고를 되풀이하고 있었을 즈음이다.
인터넷 카페에 우연히 올린 글에 누군가가 아마도 책을 많이 읽으시나 보다 글이 술술 읽힌다는 한 줄의 평에 마음이 설레었더랬다. 실로 오랜만의 설렘이었다. 글을 쓰고 싶다고 글을 써야겠다고 늘 생각 중이었는데 내 수준(?)에 딱 맞는 책을 발견한 것이다.- 혹시 이 책의 작가님께서 이 글을 읽으신다면 마음이 상하실까? 염려하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나의 이 농담의 시작이 이 책에서부터 인 것을 확인하는 구절이 있음을 알고 안도하게 될 것이다.
아니, 나를 언제 봤다고 다짜고짜 책 제목에서 명령이다. 글쓰기로 부업하라. ‘거꾸로 쓰는 글쓰기’라든가 ‘죽기 전에 글쓰기로 부업하는 100가지 방법’이라든가. 요새 혹하게 하면서 시선을 끄는 제목들이 얼마나 많은데... 툴툴툴... 책을 잡고 한 시간 만에 뚝딱 읽을 만큼 나의 마음은 바빠졌고. 나의 허상으로만 존재하던 글쓰기의 윤곽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작가는 어려운 말로 현혹하려 들지도 뭔가를 에둘러 말하지도 않았다. -난 에둘러 말하는 것을 딱 싫어한다. 그의 말에 애 둘리다 보면 나 같은 사람은 그 본질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그래서 종종은 그가 정작 전하려는 뜻을 알지 못하기도 한다. - 제목 그대로 날것의 정보들을 공짜로 제공하고 있었다. 겁도 없이. 원래 꾼들은 자신의 밑천은 안 까는 법인데 너무나 솔직해서 민망한 방법들을 그대로 나열하고 있었다. 자기의 밥그릇을 통째로 독자들에게 넘기는 실수를 자행하고 있었다.
글쓰기가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글 쓰는 사람들이 원래부터 타고난척하고 살고 있는 것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상세하고 친절하게 마치 초등학생을 불러다 앉혀놓고 기억 니은을 가르치듯 방법을 알려 주고 있다.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정말 딱이다.
나는 꽤 말을 잘 듣는 독자이다. 그가 알려준 방법대로 글을 써보려 한다.
아래 넘버링되어 있는 것은 책에서 작가가 알려준 독후 감쓰는 방법이다.
1. 맨 위에 책의 제목을 적습니다.- 적었다.
2. 지은이도 적어 넣습니다. 지은이의 간략 이력을 적어도 좋습니다.
지은이: 전주 양- 아마도 이걸 쓰지 않았다면 지은이의 이름쯤은 가뿐히 모르고 지나쳤을 것이다.
책에서 본 바로는 필명이랬다. 가만있자... 그런데 그 뜻이 사뭇 궁금해진다? 아무래도 이 작가의 작명 실력은 뭔가가 좀 남다르다. 책 제목도 그렇게 뽑더니 필명도 전혀 애 두루 지를 못한다. 그래서 더 궁금증을 자아낸다. 묘하다. 전 씨일까? 전주 출신일까?
지은이 이력: 회사원이며 독후감으로 시작해서 용돈벌이를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다.
뭔가를 10년을 했으면 뭔가 될 줄 알았다면 아직은 젊다는 증거다. 뭔가를 10년 해도 안될 것은 안된다. 나의 개인 사이다 지은이의 이력을 설명하다가 옆길로 잠깐 샜다. 지은이는 독후감 알바를 넘어 현재는 책을 열 권이나 쓴 작가님이시다. 그러나 때를 놓쳐 네*버 인물 사전에는 등재를 하지 못한 비운의 작가이기도 하다.
3. 책을 읽은 기간을 써 줍니다.
위에 썼다. 한 시간 만에 읽었다. 글이 담백하고 심플해서 머리 굴리고 다시 찾아볼 필요가 없다. 오래 읽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단박에 읽고 실천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망설이면 영영 글쓰기는 글렀다고 볼 수 있다.
4. 책을 읽으면서 밑줄 그었던 부분을 발췌해서 옮겨 적습니다. 전체 줄거리를 요약해도 좋겠죠.
정말 책 두 번 읽는 스타일 아닌데 이것 때문에 다시 뒤적인다.
책은 크게 4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I 부업이란 무엇인가?
II. 어떻게 하는가? 초짜 편
III. 어떻게 하는가? 고수 편
IV 그 외의 이야기들
처음부터 있어 보이는 부업이라며 꼬신다. 돈이 들지 않는다고도 꼬신다. 언제까지 인형 눈깔을 붙일 것이냐고 힐난하기도 한다. 게임 부업도 잠깐 소개한다. 모두의 선망의 대상인 임대 업자를 예로 들며 어차피 임대업자가 못 될 바에는 자립형 부업을 하라고 충고한다. 학생도 가능하다고 꼬신다. 이보다 발전적인 부업은 없다고 설득한다. 단 글쓰기로 먹고살 수는 없다고 못 박으면서 서론을 끝낸다. - 이 정도 읽으면 일단 세뇌가 된다.
내게 관심을 끈 건 당연, II 어떻게 하는가 초짜 편이다. 아직 고수까지는 바라지도 않기 때문에 이 부분이 가장 솔깃하다. 이 구간엔 정말로 이대로만 따라 하면 되게 쓰여있다. 정말 이 말대로라면 글쓰기가 너무 쉽다. 아직 해보지 않아서 그 결과를 모르겠지만 나 같은 팔랑귀는 충분히 솔깃하게 쓰여 있다. 이 책은 마치 글을 어떻게 쓰기 시작하는지 보여주는 교과서처럼 짜여 있다. 꼭지를 여럿으로 나누어 그곳에 살을 붙여쓰기만 하면 된다 더니 정말로 꼭지를 잘게 잘게 나누어 그곳에 정말 진액인 살만 붙여 써놓아서 장수를 늘이는 팁을 손수 보여준다. 신박하다. 그러나 장수를 늘이기 위한 술수는 아니다.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것은 다 전하돼 독자가 글을 어떻게 쓰면 되는지에 대한 팁이 꼭지별로 꼼꼼히 기술되어 있다. 이 부분에서 내가 느낀 것은 아마도 작가는 공대생일 가능성이 높다. 글이 군더더기가 없다. 인문대생의 겉멋이 들지 않았다. 글은 간결하고 명확하다. 원샷 원킬! 게다가 많은 정보들까지 담고 있다.
III 고수 편에서는 아직은 나와는 거리가 있는 이야기 들이라. 공감은 안 돼지만 지금까지 작가가 펼쳐 놓은 이야기들을 전재로 추측해 보건대 그것도 ‘되는 일’인 듯한 신뢰는 간다. 그러나 아직은 거리감이 좀 있다. 그건 사실이다.
IV에서는 글쓰기의 보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동안 ‘멍 때리고 놀지 말고 돈 벌라’고 장장 162페이지까지 쓰고 수습하느라고 미안해서 쓴 듯한 그나마 문학적인 단락이다. 사실은 나는 자기 개발서를 좋아하지 않는 소설 파이다. 어쩌다 이 책을 잡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나는 감성 파인 것이다. 그러므로 소설 감성 성애자인 나에게 이 단락은 약간의 감정의 동요마저 제공한다. 이 단락은 한 바터면 약장사가 될 뻔한 자기 개발서로 전락할 수도 있었던 책을 시간이 아깝지 않은 책으로 기억에 남길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러면서 애초에 나도 이 책의 작가처럼 돈을 벌고 싶다 로 출발한 이 책을 읽은 세속적 동기가 나도 이 작가처럼 뿌듯한 무언가를 느끼며 재미나게 살고 싶다는 충동으로 마무리된다.
5. 그 밑에 자기 생각을 넣습니다. 경험담도 좋고, 하고 싶은 말도 좋습니다. 솔직한 생각을 써보세요.
솔직한 나의 생각? 글쓰기의 핑계를 찾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언젠가는 이라고 미뤄 놓았던 그 시기도 사실은 빨리 시작해 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많지는 않겠지만 용돈 벌이는 내게 꽤 솔깃한 핑계이며 정당성이 될 것도 같다. 한동안. 한없이 어려워만 보이고 멀리만 보이던 글쓰기를 시작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을 이 한 시간으로 얻었다는 게 얼떨떨할 지경이다. 그들만의 세상에 대한 자기 개발서를 읽고 나서의 씁쓸함이 이 책에서는 느껴지지 않아서 다행이다. 거창한 척 순수한척하는 허세도 없어서 좋았다. 그냥 용돈벌이 1000원에서 시작하는 현실성이 좋았다. 아니 300원이려나? 그렇지... 글은 원래 아무나 쓸 수 있어야 하는 거지 본래. 그러고 보니 그동안 몇몇 작가들의 치명적인 척 써 내려간 글들로 글쓰기를 필요 이상으로 추앙하게도, 가까이하기엔 먼 어떤 행위로 멀리 보게도 된 점도 없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책은 그동안 글쓰기의 숫한 포기들과 망설임에 대한 위로가 되어준 책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목표만 가지고 가는 길의 지도가 없어서 방황하던 시간들의 지도 같은 책이다.
작가가 알려준 독후감을 올리는 사이트에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가보니 적어도 나와 같이 느낀 사람이 현재 스쿠아 379명(이들은 나처럼 이 책을 시작으로 부업을 시작했다)이 더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든든하다. 나도 그들도 글쓰기로 부업을 해서 돈을 벌지는 사실은 모르겠다. 그러나 나를 포함 380명은 적어도 이 책으로 더 이상 글쓰기를 두려워하지도 망설이지도 않을 것이다. 그들도 글쓰기를 시작했고 나도 글쓰기를 시작했다. 이것으로 작가님께 무한한 감사를 보낸다. 글투(말투로 그 사람을 알아보듯 글투로도 그 사람을 알아볼 수 있다.)로 본 작가는 아마도 이 부분을 상당히 기뻐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시대가 빠르게 변하면서 책을 더 이상 읽지 않는 게 아쉬웠던 시점에 이렇게라도 책을 읽을 빌미를 줘서 나같이 세속적인 사람에게 적당히 세속적 계산기를 두드리며 책을 읽어야만 하는 정당성을 준건 뽀나스다.
참, 단지 약간 아쉬웠던 점은 한참 이야기를 더 할 것처럼 하다가 갑분싸 후다닥 글을 마무리한 티가 좀 난다. 이것도 그동안 마무리에 작가들이 허세를 부렸던 탓? 그동안의 책 읽기에 단련된 타성? 아니면 정말 작가가 그 순간 화장실이 급했나 의심 가는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마지막은 추리를 하게 하는 추리물이었다. 나름 신선하다.
6. 그렇게 3쪽 정도 분량을 채우고 마감을 합니다. - 나는 말 잘 듣는 독자다. 3페이지로 마무리할 생각이다. 3페이지를 넘기면 왠지 마음이 불편할 것 같다.
7. 마감할 때 이 책의 저자에게 짤막한 편지글을 써도 되고, 가장 마음에 남는 구절을 한번 옮겨 놔도 좋습니다.-
작가님...'너는 누구니? 뭘 하고 싶니?'라고 물어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래 인간은 마법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속도가 느려 마법의 효과가 늦게 나온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 동화 같은 말이 팍팍한 현실에 위로가 됩니다.
'혼자 놀 수 있는 그 무엇'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밌게 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