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기 14일 차
주방 살림 정리
싱크대 상부장과 하부장에 꼼꼼히 쑤셔 박아 놓았던 애물단지들을 정리해 봅니다.
그냥 하던 대로 살면 좋았으련만. 그 노무 느닷없는 결심의 결과로 모여진 애들이 좀 있습니다. 저희 주방에는.
우선 냉장고를 좀 정리해보겠다고 홈쇼핑 보고 지른 플라스틱 용기들
제 워너비 냉장고의 모습이 재현되는 것을 TV에서 본 후 바로 넘어가서 질렀거든요.
정리 컴플랙스가 있던 저는 왠지 이것만 사놓으면 냉장고 정리가 촤르륵 될 줄 알았죠.
절대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배송된 지 일주일 만에 어렵지 않게 터득하게 됐고요.
배송받고는 이리 치고 저리 치고를 수일 하다. 상품을 풀어서 냉장고 정리를 시작했으나 생활의 흔적이 가득한 우리 집 냉장고에는 애초에 맞지 않았어요. 그래도 산 거니까 억지로 껴맞줘 봤지만... 몇 달 뒤 쓰이지 않는 채로 상부장에 하부장에 마구 쌓이기 시작했어요. 그러길 몇 년 남은 반찬 넣어놓는 용기로 전락 후 냉장고에도 들어갔다 냉동실에도 들어갔다를 반복하면서 뚜껑이 깨지기 시작하더니 뚜껑 없는 채로 또 뒹굴 뒹굴 ㅎㅎㅎ
플라스틱은 몇 년 되면 쩔어요 그죠? 플라스틱이라 전자레인지에 해동도 안되고... 환경에도 안 좋은걸 그때는 왜 이걸 사려고 결심을 한 건지...
이것들을 미련 없이 버렸습니다.
한때 또 베이킹에 꽂혀서 사들인 베이킹 기구들. 스틸 제품은 기름을 먹으면서 오히려 길이 들면서 쓸만한데 실리콘 제품은 아무리 식기 세척기에 넣어도 손으로 씻어 봐도 기름기가 안 가셔요. 그래서 뿌덕뿌덕 왠지 청결하지 못한 느낌
그런데 한두 개가 아니라 세트로 들인 거라 애물단지였거든요. 그런데 이 녀석들에게 미련을 접기로 했어요. 도대체가 구제가 어려워요. 기능은 멀쩡하나 뿌덕거리는 느낌이 도저히 용서가 안돼서 버리기로 결정!!!
시집올 때 저희 엄마는 왜 피크닉 세트를 해주신 걸까요? 아마도 딸내미는 본인 팔자와는 달리 슬렁슬렁 피크닉이나 다니며 살면 좋겠다고 생각하신 건 아니신지... 애잔하지만 이것이 플라스틱이었다는 거! 세월을 제대로 맞아서 얘도 늙었네요. 엄마의 로망만 간직하고 out.
그리고 그동안 식탁 한자리에 자리했던 커피프림설탕셑트 이제는 믹스커피로 설자리를 잃었지만 어쩐지 혼수로 해가지고 온 정이 있어 가지고 있었지만 이것도 이번 기회에 out.
그래도 저는 약과예요. 저랑 7살 차이나는 저희 큰언니는 그시절 무려 융으로된 집에서 입는 도레스를 혼수로 해갔거든요 ㅎㅎㅎ 그것도 엄마의 로망작. 정작 엄마는 본인은 집에서 실용적인 몸빼입으시면서 딸은 도레스입고 아줌마 부리며 살기를 바라신 거겠죠. ㅎㅎ
미니멀 라이프가요 그리 쌈박하지 만은 않아요. 심정적으로... 여러 가지 추억들을 내다 버리는 기분이 들거든요. 세월의 때를 어쩌라고 그 꼴을 못 보고 매정하게 버려버리는 느낌. 이 매정함과 한긋짐 속 그 어딘가에서 늘 갈팡질팡하다 눈을 질끔 감는 답니다.
이 몇 가지 품목들과 수명을 다한 냄비, 프라이팬을 버리고 나니 세상 널널하네요. 마구 포개져 있던 냄비들이 적절히 배치되어 ㅎㅎ 마음에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