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기 15일 차
서랍장 정리
쑤셔 박아 놓기 최적의 장소라 눈치 안 보고 이리저리 박아놓은 흔적이 역력하군요.
그나마 제가 속옷들을 동그랗게 말아서 딱 여며서 누에고치처럼 만들어 놓기 때문에 하나씩 뒹굴러 다니니 마구 섞여 있지는 않아요. TV에서 보니 어떤 연예인은 아크릴로 서랍을 칸 나누어 쓰던데 그런 건 어차피 저에겐 꿈같은 얘기구요. 그냥 종류마다 분류만 잘해놔도 다행인 거죠. 일단 양이 많아서 서랍이 벌어질 정도라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 이번 기회에 좀 솎아서 버릴려구요.
요는 속옷과 양말의 퀄리티가 쓸데없이 좋아서 절대 낡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런데도 질린다고 사모아 대니 서랍은 좁고 찾을 때는 힘들고.
일단, 한번 신고 후줄근해진 스타킹들 신지도 않을 건데 댄싱이 안 나가서 모아두었지만 어차피 안 신을 테니 out.
제 속옷 중 좀 맘에 안 드는 것들은 솎아서 버렸어요. 예전엔 몰랐는데 뭐니 뭐니 해도 엄마가 사다주신 시장표 속옷이 짱이네요. 편하고 짱짱하고. 제가 사들인 레이온 소재의 속옷은 몇 번 안 입게 돼요. 이쁘긴 한데 까슬거리고 아무리 부드러운 소재로 만들어도 시장표만큼 편하지 않아요. 그래서 엄마는 됐다는데도 굳이 사다주시는 것 같아요. ^^
원래는 브라와 깔 맞춰 입어줘야 하지만 편한 게 장땡이라 위에는 퍠션어블한 브라를 아래는 시장표 아줌마 속옷으로 ㅎㅎㅎㅎ 제가 봐도 웃겨요. 하나 편한 게 장땡.
남편은 좀 깨려나 ㅎㅎㅎ
저희 집 속옷 과잉은 저희 친정엄마 덕분이 8할이에요. 됐다는데 굳이 철철이 사다 주셔서. 우리 신랑은 특정 브랜드만 입는데. 엄마표 속옷은 입지도 않는데 사실. 사다주신 정성을 생각해서 차곡차곡 모았다가 아버님 드려요 ㅎㅎㅎ
아들 서랍엔 작아진 양말이 꽤 있어서 이것도 정리. 러닝 잘 안 입는데 엄마가 이것도 사다 주셔서 자주 입는 거 몇 개만 남기고 정리. 제가 이렇게 정리를 해도 제 아들이 또 한 번 휘져으면 다 섞여 버리겠죠 ㅎㅎㅎ 걔는 왜 양말 하나 찾아 신는데 쏙 하나 빼서 못 신고 온 서랍을 휘져은 뒤 찾아 신을까요???
딴 집 아들들도 그러나요? 티셔츠 개켜놓은 서랍도, 저는 티셔츠를 돌돌 말아 놓거든요. 찾기 좋게. 그런데 일정 시간이 지나면 모든 티셔츠가 다 풀려서 마구 엉망이 되어 있어요. 이해할 수 없는 생명체예요.
남편 서랍 보면 내가 개킨 대로 그대로 빈자리만 쏙쏙 빠져 있거든요. 그래서 빨래해서 빈 곳에 쏙쏙 꽂아두면 입어서 서루 편한데 얘는 누굴 닮은 걸까요?
어쨌든 비우면서 서랍 정리도 오래간만에 했지만 별 기대는 없구요. 한 삼일 이상태가 유지되려나?
섞여 있어도 널널하니 지가 어질러 봤쟈죠. 제발 양말을 속옷 서랍에나 안 넣으면 좋겠어요. 티셔츠 풀어헤치는 건 팔자로 받아드릴려구요. 그래도 끈질기게 해 두어서 원래의 모양을 각인시키면 먼 홋날 지가 혼자서 정리해야 할 때 생각나겠죠 뭐.
얼마 전에 제가 혹독하게 책장정리시켰잖아요? 도루 아미타불입니다. 그것은 그냥 한 번의 깨끗했던 기억으로 …